새로운 대작영화 '아 유 레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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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관객의 시선을 고정시켜야 한다.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영화의 속도는 빠르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그들 영화의 핵심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특정한 계절이 되면 찾아오는 대작영화의 홍수는 이제 익숙해질만하다. '아 유 레디?'는 실험적인 영화다.

우리가 맹목적으로 즐겼던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스케일을 그대로 따라간다면? 이야기의 경제성과 간결한 서사, 큰 큐모의 마케팅이 맞물린다면? 할리우드 못지 않은 CG 기술로 영화를 포장한다면? 이렇듯 다양한 갈래의 실험이 공존하는 '아 유 레디?"는 분명 실험작이다.

영화는 어드벤쳐 영화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알수 없는 상황에 몰린 사람들이 곤경을 겪으면서 재미있는 모험을 즐기는 것이다. 여섯 사람이 테마파크에 모인다. 30대의 성형외과 전문의 강재는 사랑하던 여학생으로부터 치명적 상처를 입은 뒤 정신적인 내상을 갖고 있다. 동물행동학 연구원 주희는 가족을 경멸하며 마음의 문을 닫은지 오래다. 베트남전의 상처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는 황노인, 그리고 견원지간처럼 만나면 싸우지만 서로에 대한 질투심을 갖고 있는 봉준구와 정현우 등이다. <아 유 레디?>라는 공간에 모인 이들은 예측불허의 사건을 겪는다.

때로 공간은 베트남전으로, 그리고 전혀 낯선 곳으로 이동한다. 여섯사람은 테마파크에서 겪는 모험이 자신들의 내적 상처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잃어버린 것"이 그들을 다시 찾아온 것이다.

영화의 스케일은 기대 이상이다. 타이 현지에서 촬영한 장면들은 기이하고 처음 접하는 공간으로 관객을 안내한다. 대규모 세트와 미니어처의 물량 공세도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다. 판타지적인 설정에 맞춰 제작한 여러 세트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압도할만하다. 게다가 화려한 CG 기술까지 가세해 영화는 한국형 블록버스터, 라는 명칭에 걸맞는다. 배역들은 그리 스타급 출연진이라 보기 어렵다.

김보경, 김정학, 이종수 등은 TV와 영화를 통해 알려진 배우들이지만 영화의 간판급 스타라 칭하기는 어렵다. 하긴 '쥬라기 공원' 등의 할리우드 대작영화 역시 스타를 전면배치한 것은 아니었다. 스타를 대신해 물량공세와 컴퓨터그래픽, 그리고 관객의 넋을 잃게 하는 모험담이 배치된다면 만사형통으로 흐를 수도 있다. '아 유 레디?'를 만든 윤상호 감독은 TV 드라마와 인터넷 영화 등으로 실력을 쌓았다. 시나리오를 쓴 고은님 작가는 '번지점프를 하다'의 시나리오 작가로 알려졌다.

'아 유 레디?'는 거대한 영화적 야심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예상을 밑돈다. 이는 영화의 기술적 노력과 고된 촬영일정과는 무관한 것이다. 할리우드 대작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간결하고 명징한 영화의 컨셉에 있다. 다양한 장르를 뒤섞더라도 그것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컨셉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보이지 않는 무기인 것. 아쉽게도 '아 유 레디?"엔 영화의 컨셉이 부족하다.

영화는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모험극에서 멜로, 액션, 재난영화, 심리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파편을 고루 섞어간다. 하지만 곁가지가 많은 탓에 재미는 반감되고 영화적 설득력은 힘을 발휘하기 힘들다. 이야기의 속도가 빠름에도 캐릭터 심리에 많은 비중이 쏠린 것도 영화 속도를 반감시킨다. 그들의 내적인 고통과 심리적 상처를 이해하고 하나씩 보듬기엔, 상영시간이 너무 짧고 모험의 강도는 세다.

최근 국내의 대작영화들은 대개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거대 물량과 확실한 볼거리,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함에도 작품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관객 반응도 냉정했던 편. 이건 단순하게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는 것일까? 혹은 한국영화 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함을 말하는 것일까? '아 유 레디?'는 영화 한편의 완성도와 흥행 여부를 떠나, 꽤나 어려운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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