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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엘레발’ … LG, 올핸 ‘김성근의 저주’ 끝내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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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호 19면

지난 1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넥센전에서 승리한 뒤 LG 투수 봉중근(가운데)이 두 손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LG의 신바람이 2013년 여름 프로야구를 흔들고 있다. LG는 22일 현재 35승27패로 4위에 올라 있다. 3위 KIA와는 승차 없이 승률에서 밀렸고, 2위 넥센과의 격차도 불과 0.5게임이다. 3게임 앞서 있는 1위 삼성도 가시권이다.

상승세 탄 LG 신바람 야구

 2013년, LG가 달라졌다. 반짝 상승세가 아니라 힘이 붙었다. LG의 포스트시즌 진출을 염원하는 팬들은 벌써 들썩거리고 있다. LG 홈 관중은 경기당 1만9933명으로 전체 1위를 달리고 있다. LG 선수들도, 팬들도 신바람이다.

 팬들에게 LG는 애증의 대상이다. LG는 서울의 맹주다. 가장 헌신적인 팬들을 갖고 있다. 아울러 무려 10년 동안이나 4강이 겨루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기도 하다. 시즌 초 반짝하다 여름 이후 추락하기를 반복했다. “올해는 다르다”라고 주장하는 LG 팬들을 두고 다른 팀 팬들은 ‘엘레발(LG+설레발)’이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의 가장 긴 침체, LG는 10년 저주를 끝낼 수 있을까.

'선수가 감독을 이기는' 하위팀 고질병
저주의 시작은 김성근(현 고양 원더스 감독)의 해임이었다. 2001년 LG 2군 감독이었던 그는 그해 5월 1군 감독대행을 맡아 최하위 팀을 6위로 끌어올렸다. 이듬해 정식 감독으로 취임한 그는 LG를 정규시즌 4위에 올려놨다. 이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 현대·KIA를 연파하며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약한 팀을 이끌고 한국시리즈에서 삼성과 6차전 접전을 치른 김성근 감독은 패하고도 적장(김응용 당시 삼성 감독)으로부터 “야구의 신 같다”는 극찬을 들었다.

 그러나 LG는 구단과 마찰이 잦았던 김성근 감독을 해임했다. LG는 ‘치밀하게 이기는 야구’보다는 ‘LG 스타일의 신바람 야구’를 원한다는 이유를 내걸었다. LG가 이후 10년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할 거라고는 그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LG는 껄끄러운 이별을 몇 차례 더 했다. 2004년 초 마무리 투수 이상훈은 스프링캠프에 기타를 가져가는 문제를 두고 구단과 갈등했다. 결국 이상훈은 SK로 트레이드됐고 시즌 중 은퇴했다. 그해 겨울 LG 내야진을 이끌었던 유지현이 만 33세 이른 나이에 유니폼을 벗고 코치 생활을 시작했다. 2005년엔 간판 타자 김재현이 프리 에이전트(FA) 자격을 얻고 SK로 이적했다. 기적을 함께 이뤄낸 2002년 멤버가 대부분 팀을 떠났다. 구성원이 바뀌자 팀 정체성도 흔들렸다.

 물론 LG가 내보낸 선수보다 데려온 선수가 더 많았다. LG는 풍부한 자금력을 앞세워 박명환·진필중·마해영 등 비싼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그럴수록 성적은 계속 뒷걸음쳤다. 이광환·이순철·김재박·박종훈으로 감독이 바뀌는 동안에도 선수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위팀의 고질병인 ‘선수가 감독을 이기는’ 현상이 나타났다.

 감독과 선수, 그리고 구단 지원 등 각 요소를 따지면 LG는 모자란 게 없다. 그러나 그들이 한 팀을 이루면 힘을 쓰지 못했다. LG 팬들은 자괴감에 빠졌다. 2000년을 전후로 번갈아 가며 꼴찌를 했던 롯데·KIA와 비교하면 팬들의 박탈감은 더 컸다. 롯데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최다 관중을 끌어모았다. KIA는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봤다.

 LG는 여러 가지 자구책을 찾았다.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신연봉제’를 시행했다. 2년 뒤 계약을 해지하긴 했지만 2010년 박종훈 감독을 영입할 때는 5년의 장기 계약으로 코칭스태프에게 힘을 실어주려 했다. 심지어 세계에서 유례없는 팀배팅 코치를 두고 있고, 마스코트 이름을 ‘팀웍이’와 ‘근성이’로 짓기도 했다. 그래도 결과는 10년째 같았다.

혁명은 없었다, 작은 변화들이 있을 뿐
“내가 시킨 일이다. 내가 잘못했고, 임찬규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우린 흔들리지 않고 계속 즐겁게 야구 할 거다.”

김기태 감독

 지난달 27일 LG 주장 이병규(등번호 9번)가 한 말이다. 전날 LG 임찬규가 인터뷰를 하던 동료 정의윤과 정인영 KBS N 아나운서를 향해 물벼락을 뿌려 물의를 일으킨 직후였다. 해당 방송사와 다른 팀 팬들이 임찬규의 과도한 세리머니를 강하게 비판한 가운데 이병규가 나서 후배를 막은 것이다. 김기태 LG 감독은 “이병규의 인터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동료를 감싸는 것, 특히 선배가 먼저 나서는 것이 올해 LG가 달라진 부분”이라고 말했다.

 2013년 LG에는 어떤 혁명도 없다. 대신 작은 변화들이 이어지고 있다. 감독·코치도, 선수도, 구단도 조금씩 배우고 또 변했다. 지난 10년의 실패 끝에 얻은 교훈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기태 감독은 코치들을 모아놓고 “야구는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다.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믿고 도와주자”고 당부했다. 시즌 개막 후 김기태 감독은 김용의·문선재 등 무명 선수들을 주전으로 발탁했다. 오지환·정의윤 등 전임 감독들이 꾸준히 기회를 준 선수들도 자리를 잡았다. 이병규·이진영 등 베테랑이 다치는 와중에도 야수층이 두터워진 덕분에 잘 버틸 수 있었다.

 LG 구단은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는 대신 불펜투수 정현욱, 수비형 포수 현재윤, 2루수 손주인 등 알찬 선수들을 데려와 약한 포지션을 보강했다. 메이저리그 출신 류제국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해 힘을 보탰고, 지난해 마무리로 전환한 봉중근은 든든하게 뒷문을 지키고 있다. LG는 드디어 상위권을 바라볼 수 있는 짜임새를 갖췄다.

 LG는 ‘물벼락 세리머니’ 직전인 5월 26일 7위(18승22패)까지 떨어져 있었다. 당시 김기태 감독은 “더 내려가도 괜찮다”며 선수들을 오히려 격려했다. 또 김기태 감독은 부상을 입었던 주전 선수들이 돌아와도 젊은 선수와 함께 골고루 기용했다.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김기태 감독은 “지난해엔 엔트리에 누구를 올려야 할지 고민했지만 올해는 모두 잘하고 있어 누구를 빼야 할지 걱정한다”며 웃었다. 예전의 LG라면 ‘물벼락 세리머니’ 같은 외풍에 크게 흔들렸을 테지만 올해는 오히려 위기를 기회 삼아 힘차게 반등했다.

 요즘 김기태 감독은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선수들이 참 잘해줘요. 이제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아요.” 공로를 서로에게 돌리는 LG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말이다. 그가 맨 앞에서 팀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맨 뒤에서 선수들을 밀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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