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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인아닌 민족자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우리의 독립지사들이 민족자결주의에 대체로 냉담하였던 것도 이해되는 바이다. 동경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서와 한용운의 옥중수기인 대한독립의 서에는 민족자결원칙이 인용되어있으나 3·1독립선언서에는 민족자결에 관한말은 전연 들어있지않은 점으로 보아도 민족자결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다만 2·8선언이나 한용운의 옥중수기에서 민족자결주의를 인용한 것은 한민족이 민족자결원칙밖에 있음을 자인하면서도 「파리」 평화의회등 민족문제의 결정을 다루게되는 국제회의에 발언할수있는 구실을 만들기위네서였던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민족자결주의는 원래 우리들이 생각해 오던것과간이 3·1운동 촉발의 전적인 원인요소는 되지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기적으로 보아서 민족자결주의가 3·1운동의 도발을 속개하고 촉진시킨 결과로 된것은 부인할수 없는것이다. 3·1운동도발의 결정타가 된것이 2·8선언이라먼 민족자결주의는 2·8선언을 수발케한 중요한 도인이였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러므로 3·1운동과 민족자결주의와의 관련성을 본다면 3·l운동은 의병운동 이래로 점차로 커지고 굳어지면서 지속되어 내려온 독립운동의 저력의 내재적 소지가 되었을뿐이다. 그런데 일제는 우리가 마치 민족자결론에 부화뇌동하여 소요를 부린다는 식으로 선전하였던 것이니 이는 일찌기 시저오디었어야 할 주요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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