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상해임시정부 탄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여하간 이러한 평화시위에 대해 일제의 군·경은 계획적 고의적으로 암살과 투옥과 만행을 계속하였다. 더우기 수원제암리를 비롯하여 많은곳에서는 천인이 공노할 대량학살을 감행하였는데 특히 제암리의 참살은 일제의 계획된 소행인것같다. 제암리의 대학살이 4월15일이고 그들이 독립운동자 처벌을 위해 제정한 제령의 공포가 같은날이었었다.
또한 다른곳에는 외국인선교사들의 시찰을 막으면서도 제암리시찰만은 도리어 권장한점으로 보아서이다.
3·l운동의 촉발후 국내외에서는 독립운동의 선구적이고 중구적인 주체와 방향에대한 여론이 높아져 마침내 이해4월10일에 상해에서 임시의정원이 구성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연생되어 독립운동의 중구기관으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여기까지 이르기에는 우여곡절이 적지않았으니 즉 국내에는 한성공부, 상해에 임시정부 노령에는 대한국민의회, 간도에는 군정부가 설립되었던것이다. 대한국민의회는 3윌17일 해참위 신한촌에 노령과 간도의 대표자가모여 문창범이 회장인 한족중앙총회를 발전적해산하고 21일에 손병희와 박영효를 정·부통령,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한 대한민국의회를 조직한것이다.
한성정부는 3월말 이규갑 조만식등의 주동으로 서울서 13도대표가 국민대회를 열어 미리이승만을 집정관, 이동휘를 국무총리로하여 4윌23일에 조직한것이고 신한민국정부는 3월말 이동휘를 집정관으로하여 조직된것인데 한성정부안이 토대로되어 4윌l0일 임시의정원회의가 열리고 동13일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이승만이 국무총리로 되었다가 9월11일 대통령으로 바꾸어졌다.
임정수립후 대한민국의회와 임시의정원이 병합되고 간도에 설립되었던 군정부도 군정서로 고쳐져서 임정의 수립을 계기로 각지역의 단체와 세력들은 임정을 정점으로 하여 운동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