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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 뉴 닉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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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리처드·M·닉슨」씨(56)는『미합중국대통령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온갖 힘을 다하여 국헌을 유지, 보호, 수호할 것을 엄숙히 선서한다』는 짤막한 서약으로 1월20일 미국 제37대 대통령으로 정식 취임했다.
「닉슨」대통령이 평화로운 정권교체의 전통을 세계만방에 과시하면서『위대한 사회』건설을 표방한「린든·B·존슨」전임대통령의 민주당 행정부로부터 정권의 고삐를 이어받고 『함께 전진하자』의 구호 밑에 내외문제들의 무거운 짐을 만재하고 4년의 항해길에 떠나던날 인구2억의 미국땅은 새대통령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축제의「무드」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늘의 면모 「트루만」때>
「존슨」 대통령이 『영광과 비애의 수도 「워싱턴」을 하직하고「텍사스의 경지로 가서 안락의자에 앉아 역사의 심판을 조용히 기다리겠다』고 감상어린 소감을 펴면서 37년의 정치생활에서 귀향의 길에 오를 채비를 하는 동안 공화당의 「닉슨」신임대통령은 8년전에 당한 쓰라린 곤욕을 되새기며 「펜실베이니아」가 1600번지에 자리잡은 백악관에 입주했다.
백악관-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과 영광을 한 몸에 지니면서도 가장 구속받고 고독한 주인공의 집, 2억의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는 정치의 「심벌」이다.
1800년「존·애덤즈」제2대 대통령이 입주한 이후로 연면 35명의 대통령(「닉슨」은 37대이지만 「그로버·클리블런트」대통령이 「벤저민·해리슨」을 한번걸러 두번 대통령이 되어 실제 인물 수는 35명)이 거처해온 백악관은 지난 1백73년 동안 갈리는 주인공들과 함께 변모해왔다. 퇴임을 불과 몇 달 앞두고 그해 겨울에 아직 완성되지도 않은 대통령 관저에 입주했을때「애덤즈」대통령부인「애비게일」여사는 어수선하고 스산한 꼴을 다음과 같이 딸에게 써보냈다. 『방안은 추운데다 비까지 새어든다….하인들이 집에서 5백미터나 떨어진곳까지 가서 물을 길어온단다. 다행히도 「홀」에는 통풍이 잘되어 빨래 너는데는 걱정이 없다』고.
1814년의 방화로 불난 후로 바깥벽에다 흰칠을 입힌 것이「화이트·하우스」로 불리게된 시초였던것. 그때만 해도 대통령의 식구에는 너무 크고 춥고 조명이 시원치 않은 돌건물에 불과했던 이 관저는 역대 대통령을 주인으로 모시는 동안 내부 개조·개축·증축의 화장을 계속하여「해리·S·트루만」 대통령시절에야 오늘날의 「화이트·하우스」면모를 갖추게 되었던것. 이제 1백개가 넘는 방, 복도40, 목욕실19, 화장실12, 의무실, 소극장, 칫과의사실,「풀」장, 일광욕장을 지닌 「화이트·하우스」에는 75명의 일꾼들이 요리를 하고, 정원을 가꾸고, 닦고 광을 내면서 돌보고있다.

<매일 중요결단내려야>
누군가가 미국대통령에 당선되기란 「쿠바」의 수상「피델·카스트로」가 「미스·유니버스」대회에서 여왕으로 뽑힐수 있는 가능성에 비유한 일이 있다.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뚫고 백악관에 들어서는 대통령은 대통령이기 때문에 때로는 하루에 수천명의 사람들과 악수를 나누어야하고 인류의 운명을 결정하는 화전의 결단을 수시로 내려야하고 또 어딘가 숨어서 항상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객의 표적도 된다.
자나깨나 대통령의 주변에는 항상 수명의 보좌관들과 비밀경호원들이 그림자와 같이 붙어다닌다. 아침에 깨자 바쁘게 보고를 받고 그날의 중요결단을 내려야하고 이 결단에 따라 미국, 아니 자유세계와 공산세계가 숨가쁘게 움직인다. 대통령 관직의 문장에 들어있는 독수리는 그 오른발에 「올리브」 가지를, 왼발에는 13본의 화살을 잡고있어 평화와 무력의 권한을 상징하고있다. 화전의 결단을 언제나 강요당하는 대통령은 짐이 무겁고 고독하기마련. 지금과 같이 책임이 무겁지 않고 세상이 복잡하지 않던 때도 「조지·워성턴」은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것은 『처형장에 나가는 죄수의 기분과 별로 다를것이 없다』고 무거운 기분을 나타내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국내외 여행 때나 백악관에 있을 때나 가강 무거운 짐의 하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다. 여행하거나 거리에 나서면 앞을 다투어 내미는 손을 잡아줘야 하고 백악관에서는 수없이 많은 손님을 맞아야한다. 1922년 신년 하례식에 6천5백명과 악수한「워린·하딩」대통령이나 1907년 8천5백여 회나 남의 손을 잡았던 「디어도·루스벨트」대통령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케네디」대통령만도 어느 땐가 하루에 2천명과 악수하여 손이 부르텄다는것.
대통령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비밀경호대원들의 성화 때문에 행동에 큰제약까지 받는다. 식사도 마음대로 할수없다.

<경호원·주치의의 포로>
「존슨」 대통령이 어느땐가 연회석상에서 마음대로 먹어서는 안될 「피너트」를 집어먹었다가 담당관에게 『극히 엄중한 주의』를 받았다고 한다.
백악관에는 대통령의 신체안전을 진단하는 담당관이 있다. 매일 한번씩 꼭「가이거·카운터」로 정밀히 검사 받는데 이유는 어느 적국간첩이 방사능 물질을 대통령의 신체에 부착시키지나 않았나 하는 염려 때문. 보통의 의료검진도 철저하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대통령의 임무와 권한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3군총사령관으로서의 전쟁명령권. 그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수많은 비밀경호원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있지만 불시의 기습에 대비하여 백악관에는 핵폭탄 방공호가 있고 오해에서 오는 핵전쟁을 막기 위해「모스크바」와의 직통전화선이 설치돼있다. 이 직통전화선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테스트」하기 위해 매일 직통선에 연결된「텔리타이프」에는『게으름뱅이 여우놈이 울타리를 넘었다』는 교신이 계속된다. 글 김지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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