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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0년 후 세상엔 나올지 모른다 남성 차별 금지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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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화장하는 남자, 그루밍족이 등장한 지도 꽤 됐다. 그중 한국은 유별나고 화끈하다. 남성 화장품 시장 세계 1위. 5년간 연평균 15%씩 성장해 지난해엔 1조원을 넘어섰다. 올 초 가수 싸이가 모델로 등장한 화장품은 한 달 새 20만 개 넘게 팔렸다. 볼터치나 아이라인, 립스틱 등 색조 화장을 하는 남자도 10명 중 1명꼴이라고 한다.

 어디 그뿐이랴. 2010년엔 남성 전문 성형외과도 생겼다. 이름도 ‘자연 미남’을 뜻하는 맨앤네이처다. 성형은 20대, 모발 이식은 30대, 잡티 제거는 40대, 50대 이후는 보톡스 고객이 주다. 코 수술 하나에 250만원 정도. 최근 불경기로 매출이 주춤하긴 하지만 고객은 꾸준히 늘고 있단다. 성형 전후 사진을 올려놓고 품평하는 카페도 꽤 있다. ‘눈을 좀 더 찢었어야 해’ ‘턱 선이 부드러우면 좋겠네’….

 ‘예뻐져야 산다’는 말은 이제 여성 전유물이 아니다. ‘마초의 멸종+초식남의 증가’에 늘어나는 알파걸과 골드미스까지, 여성에게 잘 보여야 남자가 행복한 세상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한발 앞서 간다는 방송·연예계 쪽은 이미 연상녀-연하남 커플이 대세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정세진 아나운서는 11살, 가수 백지영은 9살, 탤런트 한혜진은 8살 연하남을 선택했다고 화제다. 이를 두고 20여 년 전 개그맨 엄용수가 17살 연하녀와 결혼할 때 온 연예가가 떠들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가는 옛날 사람 취급을 받게 됐다.

 이런 우스개도 있다. 명문고를 나와 명문 외국 대학을 졸업한 재원이 좀 과장해서 100곳쯤 취업 원서를 밀어 넣었지만 떨어졌다. 도무지 이유를 몰라 갑갑해하는데 대기업 인사 담당인 친구 아빠 왈. “스펙 완벽하고, 성격 좋고, 외모 출중하니 만점일세. 그런데 딱 하나를 못 갖췄어. 남자.” 남자였으면 100% 합격했을 걸 여자라서 안 됐단 얘기였다. 하기야 재계 인사 담당자들이 “입사 시험에서 실력대로 줄을 세우면 100등까지는 다 여자”란 말을 한 지도 한참 됐다. ‘남자 배려’가 없으면 남자 청춘은 취업 문턱을 넘기 어려운 세상이다. 오죽하면 공부·취업 얘기가 나오면 딸 가진 엄마가 아들 가진 엄마를 측은한 눈빛으로 봐주는 게 에티켓이란 얘기까지 나올까.

 국방부가 추진 중인 군 가산점제 부활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군 가산점제는 99년 여성과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이유로 위헌판결이 나 폐지됐다. 14년이 흘러 그간 세상이 워낙 많이 바뀌었다며 부활 목소리가 크지만, 반대도 만만찮다. 아직은 예뻐져야 사는 남자들이 더 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멀지 않은 듯하다. 이 추세라면 10년 뒤엔 이런 기사가 신문 1면을 장식할지도 모른다. ‘국가 차원에서 남성 차별 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

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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