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시인의 접목 작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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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금 막, 내 안의 덜걱거리는 관절에서 아주 연약한 새순이 돋는다. 느닷없이 허리 부러진 내 지난 스무개의 강한 뼈들. 그들이 안스러이 외치는 규정의 노래 가락에서 지금 막, 꼭지 달린 풋과일이 떨어진다. 몹시도, 참 몹시도 따가운 기침을 토해내며 오래 집념의 잔뼈들을 간추려 쉰다. 접목 후의 기쁨은 비로소 깊고 황막한 한때의 경험이다.
시조가 백화점의 상품권이나 영화 배우처럼 억수로 관객들이 열광할 때까지 당분간 나는, 단 한사람의 고독한 시인이며 독자다. 못다 푼 한과 가난뿐인 내 조국의 착한 소시민, 산등성이 헐벗은 판자촌에서 피어오르는 하루만큼의 저녁 연기. 나는 그들의 고달픈 생활이고, 따스한 꿈이고자 한다. 다시 접목을 시작한다. 나의 미세한 겨울 잎새들이 지독하게, 지독하게 떨고 있다.

<약력>▲1949년 전남구례출생▲전주영생고교 졸업▲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1년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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