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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웅자 구름벗고 새해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잠 못이루는 밤입니다.
흔들리는 상선의 불빛, 긴 투영을 적시는 시간입니다.
손을 주십시오.
청자 하늘 빛어낸 모타나수로
꺾이는 갈대를 붙안아 주십시오.
어둠으로 침전하는 영혼에게
굵고 따뜻한 밧줄을 내리십시오.
의로운 섬기슭,
하얀 포말이 일 듯 당신 향한 그리움
다만 루비알로 영그는 보람이게 하소서
님앞에 서기 먼 이 밤
쇠붙이 소리에 지쳐 식은땀을 흘리는
찬 대지의 허리를 딛고 서면 전생을 타고 오는
전율이 있습니다.

<2>
하수구에 불빛 홀러가는 마음,
껍질을 벗겨내도 껍질이 돋아나는 마음.
이 어둠을 홀로 자리하시고
광야를 진동시키는 음성으로 나를 불러줄 이
오늘을 버리고 가는 뒤안길에 매한이사 없거니
먼 날
잠든 수면에 달이 솟으면
떨리는 나뭇가지
가지마다에 엉키우는 달빛,
밀리는 하늘이며...
이런것들로만 충만 하옵길-
오늘을, 껍질을 벗겨내도 껍질이 돋아나는 오늘을,
낙엽이듯 묵묵히 밝고 가나니-
광야를 진동시키는 음성으로
날 부르며 부르는 지나갈 이 그리워-

<3>
찢긴 칼렌다위에
아연판치는 소리를 내면서
굴러내리는 밤이여.
눈보라속을 가듯
눈보라속을 가듯
눈망울에 어리는 따뜻한 체온같은
팔을 흔들며
낙과인양 떨어져 밤이 궁그는
그 속을 갑니다.
바람이 붑니다.
하얀 셀로판지위에 이 생을 접으시던 날
손을 쥐고 가늘게 떨으시던
숨소리같은 바람이 흐리고 있습니다.
그 면사포위로 거미처럼 실을 뽑으며
기어오르는 밤이여
그러나 아직 떠날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지금쯤 지도에도 없는 산맥을 넘어
조그만 불빛이 나를 찾아오고 있다기에
유리조각같이 부서지는 햇살이 깔리는 길을
내가 갑니다.
※모타나수=친세음보살의 자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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