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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5도 여행사 티켓 사재기 … 뱃삯 지원 예산 14억 가로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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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3월 초부터 백령·연평도 등 서해5도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다시피 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나날이 강도를 더해 가던 시기다. 특히 주민 70%가 관광업에 종사하는 백령도는 타격이 컸다. 올해는 ‘서해5도 방문의 해’이기도 하다. 급기야 조윤길 옹진군수는 “외지 관광객 뱃삯의 70%를 깎아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 사업은 결과적으로 여행사들의 배만 불려준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사들이 여객선 티켓을 사재기했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제때 배 편을 구하지 못해 웃돈을 주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구입해야 했다. 인천시 옹진군은 지난달 2일부터 ‘서해5도 여객운임 70% 할인’ 사업에 들어갔다. 인천시 예산 등 사업비 14억원이 소진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여객선 요금을 지원한 것이다. 사업비는 20여 일 만에 바닥났다. 지난 13일 현재 할인 티켓 구입자는 1만7500여 명이다.

 백령도 여객선의 왕복 운임은 13만1500원이지만 70%를 지원받으면 4만500원으로 떨어진다. 이 바람에 외지 관광객이 몰리는 주말 배편은 예년과 달리 이달 말까지 매진됐다. 하지만 여객선터미널에서 구할 수 없는 티켓을 여행사에서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다. 여행사들이 미리 표를 구입해 놓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 8일 백령도를 다녀 온 임모(54·경기도 안산시)씨는 “여행사에서 70% 할인 배표와 숙박을 포함한 1박2일 패키지 상품을 20만원 주고 이용했다”고 말했다. 할인 배표의 명의는 다른 사람이었으나 개찰구에서는 혼잡을 이유로 확인하지 않았다. 백령도에는 현재 10여 개의 여행사가 영업 중이다. 옹진군은 지난주 인천해경에 수사를 의뢰했다. 인천해경은 배표를 판매한 한국해운조합으로부터 자료를 넘겨 받아 표 구입자가 실제 백령도를 여행하려 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인천해경 이명호 형사계장은 “단체관광객의 대표자들을 조사해 보니 대부분이 해당 여행사의 가이드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서해5도 관광 지원 예산이 엉뚱한 곳으로 새고 있지만 방지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옹진군은 2011년 천안함 사태 이후 서해5도를 찾는 관광객이 급감하자 옹진군 섬에 1박 이상 체류하는 관광객에게 뱃삯의 50%를 지원했었다. 하지만 일부 여행사가 서해5도 주민 명의를 도용, 할인 승선권을 사용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옹진군은 올해부터 서해5도 주민 신분증 인증기를 도입했지만 이는 주민 이름을 도용하는 부정승선만 차단할 수 있다. 매표소나 개찰구에서 신분증과 얼굴을 철저히 대조하는 등 확인작업을 하는 수밖에 없지만 출항 시간에 쫓겨 이마저 쉽게 지켜지지 않는다. 옹진군 관계자는 “지문인식기 도입 등 다른 대책을 강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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