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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사드 싸고도는 푸틴 G8회의서 왕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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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G8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6일(현지시간) 런던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왼쪽)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런던 AP=뉴시스]

“적을 사살한 뒤 주검에서 장기를 꺼내 먹는 반군에게 무기를 제공하는 게 유럽이 수백 년 동안 지켜온 인도주의적 전통에 부합하는 일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격앙된 어조로 반문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러시아인의 손에 피를 묻히는 행위 아니냐”는 영국 기자의 질문에 대한 반응이었다. 시리아 반군은 지난달 알아사드 측 병사의 시체에서 심장을 꺼내 이로 물어뜯는 동영상을 찍어 유포했다. 푸틴은 거칠게 말을 이어갔다. “러시아가 시리아의 합법적 정부에 무기를 지원하는 것은 국제법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16일 저녁(현지시간) 영국에서 열린 푸틴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공동 기자회견장에서의 일이었다. 캐머런은 17일 북아일랜드 로크 에른 호숫가 리조트에서 개막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앞두고 푸틴을 런던의 총리 관저로 초청했다. G8 의장국 총리로서 시리아 내전 수습책을 논의하기 위한 만남이었다. 캐머런은 앞서 나머지 6개국 대통령·총리와는 화상전화로 의견을 조율했다.

 G8 회의 사전 정지작업 차원에서 ‘총대’를 메고 러시아의 입장 변화를 이끌려던 캐머런의 의도는 빗나갔다. 그는 회견에서 “우리는 다른 역사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 차이를 극복할 때 강력한 파트너십을 발휘할 수 있다”며 푸틴과의 의견 차이가 컸음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알아사드 정부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알아사드에 맞선 반군에 대한 무기 제공 의사를 밝혔다. 영국과 프랑스는 EU의 대시리아 무기 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시켜 놓은 뒤 반군에 대한 군사적 지원 여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BBC 방송은 “시리아가 G8 정상회의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사태 해법에 대한 논의로 경제난 해소, 탈세 근절 공조, 이란·북한의 핵문제 등의 주요 의제들이 뒷전으로 밀려난 데다 러시아 대 나머지 7개국의 대립 양상으로 회담이 전개되고 있다는 의미다. 1976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캐나다·일본이 시작한 G7 회의는 1997년 러시아를 포함시켜 G8으로 확대했다. 러시아는 올해 주요 20개국(G20) 의장국이고, 내년에 G8 회의를 개최한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북아일랜드에 도착하자마자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알아사드의 폭력배 무리를 돕는 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G8은 본디 7개국 더하기 한 나라의 회합”이라며 러시아를 모임의 주류에서 배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G8 출장길에 오르며 “푸틴 대통령에게 학살을 방관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일깨워주겠다”고 말했다.

 이틀간 열리는 정상회의에서 16일 오전 첫 공식 의제로 지구촌 경제 문제가 다뤄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국에 경제 성장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 등을 제안했다. 긴축정책을 고집하는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를 겨냥한 것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정상회의 공동 발표문에 성장과 고용 창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했다.

런던=이상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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