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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백주기「파리」유품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보들레르」백주기를 기념하는 유품전시회가 「파리」의 「프티·발레」에서 뒤늦게 열리고 있다.
1867년 그가 사망했을때 그는 빚에 쪼들리고 몸과 정신이 아울러 병들어 있었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출판조차 되지않고 있었다. 그의 장례식에는 소수의 친구들밖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의 명성은 그의 사후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으며, 늦기는 하지만 49년에는 그의 시에 내려졌던 판금령도 해제되었다. 8백여종의 유품이 전시된 이전시장은 「보들레르」의 냉소적이며 파격적인 정신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직적이며 형식위주로 꾸며져 있긴하나 그런대로 이 위대한 시인·비평가의 생시와 그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데 어느점도 성공한것같다.
예술적 판단보다는 차라리 훌륭한 문장 「스타일」로 그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미술평론에 이전시회의 촛점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그가 생시에 친근하게 지냈던 「들라크르와」「쿠르베」의 그림과 그에 대한 「보들레르」의 평론은 방하나를 온통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앵그레」의 「오달리스크」(궁녀)등 낭만주의 계열의 그림들이 그의 평론과 함께 진열되어 있다.
그의 문학활동중 특히 증요한 부분은 「에드거·앨런·포」의 번역사업이었다.
그가 상징주의의 원조가 되는데 큰 영향을 준 「포」의 번역물은 「알퐁스·레그로」의 아름다운 삽화를 갖춘 초판을 비롯하여 모두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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