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홍콩, 스노든 미 송환 사실상 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전 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지지자 300여 명이 15일(현지시간) 홍콩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 앞에서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홍콩 AP=뉴시스]

렁춘잉(梁振英) 홍콩 행정장관이 에드워드 스노든(29)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을 홍콩 법률과 법 절차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도청·해킹 사실을 폭로하고 지난달 20일 홍콩에 입국한 뒤 나온 행정수반의 첫 반응이다. 사실상 스노든을 미국에 송환하지 않겠다는 의미여서 미국과 중국 간 외교적 갈등이 예상된다.

 명보(明報) 등 홍콩언론에 따르면 렁 장관은 15일 성명을 내고 “스노든 문제와 관련된 법적 조치가 시작된다면 적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것이며, 홍콩 기관과 시민의 기본권 침해 여부에 대해 철저히 추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스노든은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 인터뷰에서 “NSA가 2009년부터 수백 개의 중국·홍콩 표적에 대한 컴퓨터 해킹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홍콩의 대학과 공무원·학생들에 대한 도청도 포함돼 있다.

 따라서 홍콩 당국의 조사 결과 스노든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중국을 통해 미국에 항의하겠다는 얘기다. 홍콩의 외교와 국방 권한은 중국정부가 갖고 있으며 렁 장관의 발언은 중국정부와 사전 교감을 통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스노든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할 경우 홍콩은 이를 수용하고 미국으로 송환을 거부하겠다는 의미도 있다. 이 경우 송환을 요구하는 미국과 이를 거부하는 중국 간에 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홍콩은 중국으로 반환 1년 전인 1996년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 협약에는 망명 등 정치적 목적이 있는 범죄인의 경우에는 송환을 거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한편 15일 홍콩에선 300여 명의 시민이 스노든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며 현지 미국 총영사관까지 행진했다. 이들은 홍콩 정부에 스노든을 보호하고 미국 정보기관이 ‘프리즘’이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통해 세계 각지의 통신망을 감시해온 것을 성토하는 구호를 외쳤다.

 홍콩인 절반 정도는 스노든의 신병인도에 반대하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홍콩 중문대 커뮤니케이션·여론조사센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09명 중 49.9%가 스노든의 송환에 ‘반대’하거나 ‘강하게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6일 보도했다. 스노든을 미국에 돌려보내야 한다는 응답은 17.6%에 불과했다.

 홍콩 공민당 지도자인 앨런 렁 카킷 의원은 “만약 지금 단계에서 중국 정부가 개입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스노든 송환 압력이 거세질 수 있다”며 중국의 개입을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는 스노든의 신병처리와 관련,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지난 14일 미국과의 해킹 공방 등 인터넷 관련 외교현안을 전담 처리하기 위해 ‘인터넷사무판공실’을 설치했다고 밝혔다.

베이징=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