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발한 알코올 때문에 생긴 이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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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호 23면

1960~70년대 빛 바랜 사진 혹은 오래된 이탈리아 벽화의 한 부분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투박한 두 손 위에 한 송이 붉은 포도가 조심스럽게 올려져 있다. 누구의 손일까. 그리고 왜 포도를 손 위에 올려놓게 된 것일까. 장난스럽게 찍은 손도장은 또 무슨 뜻일까.

김혁의 레이블로 마시는 와인 <16> Angels Share

이 독특한 와인 레이블은 현재 호주 바로사에서 쉬라즈를 주 품종으로 부티크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투 핸즈(Two Hands) 와이너리의 ‘앤젤스 쉐어(Angels share)’다. 레이블에 사진을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더구나 신체 일부만 사용한 모습이 보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 레이블의 사진을 찍은 작가는 호주 아들레이드에 본거지를 두고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돈 브라이스.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행위에 렌즈를 들이대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어떻게 이런 레이블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보통 와인을 오크통에서 숙성시키는 동안 알코올이 증발한다. 그로 인해 오크통에 공간이 생기면 외부 공기와 접촉이 이루어지면서 와인이 산화될 수 있다. 그래서 정규적으로 증발되는 양을 측정하고 그만큼의 와인을 오크통에 채워줌으로써 공기와의 접촉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증발한 알코올을 두고 와인 메이커들은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는 멋진 말을 생각해 냈다. 사진가는 분명 이 이야기를 와이너리 오너로부터 들었을 것이고,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을 것이다.

1999년 설립된 투 핸즈 와이너리의 두 오너는 오랜 친구 사이로 건설업에 종사하던 미셸 트웰프트리(Michael Twelftree)와 오크통 제작 회사의 전직 CEO였던 공인회계사 리처드 민슈(Richard Minch)였다. 둘은 각자가 갖고 있던 장점을 최대한 살려 남들과 다른 부티크 스타일의 와인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작가는 투 핸즈라는 와이너리 이름도 보여주고 ‘천사의 몫’도 표현하고 싶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증발 양을 사진 속에 직접 표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증발된 와인의 상징으로 두 손 위에 이 와이너리에서 키우는 쉬라즈 한 송이를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손 두 개의 핸드 프린트와 포도를 올린 두 손 사진은 투 핸즈 와이너리와 천사의 몫,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의미를 함축해 담아낼 수 있었다.

호주에서 생산되는 쉬라즈는 프랑스의 쉬라에 비해 색이 진하고 맛이 강한 편이다. 투 핸즈의 와인은 두 오너의 와인 철학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품질에서의 양보를 허락하지 않는 것이 모토란다. 그래서 포도 수확 후 6주가 지나면 오크통들의 품질을 검사해 3단계의 등급을 정하고 분리한다. 와인을 만드는 사람들은 아기를 키우는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아기에게 더 좋은 등급을 줄 것인가를 명확하게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품질이라는 철학의 유지를 위한 결단은 꼭 필요한 것이므로 이들 와인의 운명은 갈라지게 된다. 그 결과 가장 좋은 통은 ‘Flagship Range’로, 그 다음은 ‘Garden Series’, 마지막은 ‘Picture Series’ 순으로 간택된다.

천사에게 자신의 일부를 돌려주고 남은 와인은 분명 천사가 마신 와인과 같은 것 아닐까. 이 와인을 마신 천사가 어떤 미소를 짓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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