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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5일|붉은 마수벗어난 최대기군의 일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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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몸서리치는 피납5일』이라고 말했다. 지난달29일 강원도평창군상원사에서 공비들에게 납치됐다가 4일밤10시30분 극적으로탈출한 최대기군 (21·충남청양군화성면광평리)-공포와 허기로 초췌해진 몸을가누기도전에 공비들이 숨어있는곳을 찾는 아군수색작전에 앞장섰다.
최군은아군수색대의 품에안기자 『잔비의 주력은 빈틈없는 아군의수색과 허기로 피로를잃은데다 내분까지겹쳐 자멸상태』라고 그생태를말했다. 최군이밝힌 피납5일간의 일지는 다음과같다.
▲29일=밤9시30분 공비○명이 상원사에 침입, 총부리를 대고 쌀과 옷가지등을 마구 뒤졌다. 공비들은 이평능스님(63)을 이미 죽였다면서 협박, 종명·윌령·부전동다른 스님 7명까지 해칠기세로 살기가등등했다. 『아차 죽었구나』하고아찔한 속에서 차츰 정신을 되찾아 꾀를 냈다. 『동무들 수고하오. 나도 평소부터 동무들과뜻이 같았소』하며 밥도지어주고어울리는체 했다.
공비들은 『동무의 정신이좋다』면서 따라오라하여 밤12시 납치됐다. 그길로 오대산 비로봉쪽을 향해 강행군 4시간.
▲30일=새벽녘에 2개의 바위동굴에 매복, 절간에서 「비닐」봉지에 넣어간 밥을 나눠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대위로 지휘자 인듯한 공비1명이『김신조등은 인민을 배반한 악질반동이니 이들이보내는 자수「비라」에 속지 맡라』는 등의 훈계(?)를 했다.
상오11시30분 공비들은 소대장 지휘에따라 3개조로편성, 매복장소를 비로봉꼭대기로 옮기던중 우리수색대에 꼬리를 잡혔다. 치열한·교전끝에 공비3명이피살, 1명(장교)은 중상, 다른 공비4명이 경상을입고 뿔뿔이흩어졌다.
이교전이 있은뒤로는 심한 감시를 받으며 4명의 공비를따라 산길을헤매다 밤11시쯤 잔비들과 합류했다.잔비들은 보초2명을 세워놓고 동굴속에 숨었다.
▲1일=상오1시쯤 공비1명(정보장교)이 북괴에 무전으로 교신하는것을 보았다.잠자는체하고 누워있으려니까 공비들끼리 내분이났다. 『우리가 승려들을 안죽였기때문에 이런 피해를 입었다. 죽이려는것을 왜말렸느냐』는등의말다툼을하다가『이놈도 배신할것이니 동해에서 어선을 뺏어달아 날때 처치해 버리자』고 말하는 것을 엿들었다. 등골이 오싹했다.죽더라도 탈출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공비들은 온종일꼼짝않고 비좁은 바위골에서 숨어있었다.
아침·점심을 굶고 밤에 간신히 저넉밥읕 해먹었다.공비들은 지칠대로 지쳤다.아군수색대의 자수하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자수하면산다』고 내가 얼핏권하자 『이새끼죽여버린다』면서 총을들이댔다.
▲2일=공비들은 세개의동굴에 분산하여 매복, 이날도 꼼짝않고 엎드려있다가 밤11시 공비○명이 수색나간다면서 동굴을빠져나갔다. 부상당한나머지 공비들은 잠시도감시의 눈초리를 쉬지않았다.
▲3일=새벽3시30분쯤 수색나갔던 공비○명이돌아오더니 『평창군○○면○○리 유모씨(45)집을습격, 식량을 뺏으려다 예비군에들켜 되돌아왔다』면서 못다한 발악을 아쉬워하기도했다. 먼동이트자 공비들은 아군수색이 두려워 장소를옮겨 바위굴밑을파서 그앞에 「텐트를치고 나무가지와 가랑잎을덮어 위장했다.
▲4일=공비들은 퇴로가막혀 사경에이르자 공비출몰을 즉시신고한 상원사승려들을 틈만있으면 죽이겠다고 별렀다.
밤8시 잔비○명이 북괴와 교신하러나가고 부장잔비○명이 밥을 지으려는 순간 『나무도하고 오줌누고오겠다』고 허락을받아 그길로 탈출, 있는힘을 다해 계곡을 마구뒹굴었다. 캄캄한 험한산속을 2시간이상 헤매었다.
갑자기 「정지」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가 밤10시30분께였다. 상원사아군수색대 전방초소에 닿은 것이다. 오영호상병등 아군수색대9명이 『누구냐』고하자 『국군이냐?』고되물었다. 오상병이『그렇다』고 대답하는 순간 『사람살려라』는 외마디소리를지르고 실신했다.
현지취재반 일부교체
▲사회부=김진규
▲사진부=이창성
▲지방부=임병돈 장창영 정연복 김형진 장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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