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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감축史] 71년 7사단 2만명 첫 철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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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미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 발효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거로 전쟁 억지 및 연합방위체제 구축을 위해 한국에 주둔하기 시작한 미군의 감축 역사는 1969년 7월 25일 발표된 '닉슨 독트린'에서 시작된다.

당시 닉슨 미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국내외의 반발과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해 "아시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방위의 1차적 책임은 당사국이 져야 하고, 미국은 선택적이고 제한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는 내용의 독트린을 발표했다.

'아시아 주둔 미 지상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요 골자로 하는 이 독트린에 따라 71년 3월 주한미군 7사단 2만여명이 철수했다.

닉슨 대통령 이후 주한미군 감축론이 물밑으로 가라앉는 듯했으나 지상군 3만2천명 철수를 공약으로 내세운 지미 카터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다시 급부상했다.

하지만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공화당 등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보수세력의 반대에 부닥쳐 좌초하고 말았고,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감축론은 공론의 장에서 사라졌다.

주한미군 감축론이 다시 고개를 든 것은 80년대 중반이다.

미 행정부 및 의회의 지도자 중 일부가 "한국의 국력 증강으로 한반도에서 미군이 없어도 될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론을 강력히 제기했던 것이다.

논란을 거듭하던 끝에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89년 11월 미 상.하원 합동위원회는 상원 군사위원장 샘 넌과 상원의원 존 워너가 제출한 '넌.워너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주한미군 감축 5개년 계획안'이라고 불리는 이 수정안은 ▶주한미군을 부분적이고 점진적으로 감축▶한반도에서 미군의 역할을 주도에서 보조적 지위로 조정▶특정 임무와 작전권 한국에 반환▶행정부는 구체적 계획안을 수립해 의회에 보고 등의 내용을 담았다.

이에 따라 미 행정부는 90년 4월 '21세기 아시아.태평양지역 전략구상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폴 울포위츠 당시 국방차관(현 국방부 부장관) 등 행정부 대표 4명이 청문회를 통해 의회에 설명한 이 보고서에는 3단계 감축안과 작전권 한국 이양 등의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

감축안은 ▶1단계(90~92년)는 병력 7천명 감축▶2단계(93~95년)는 남북관계 등을 검토한 뒤 2사단 병력의 삭감 등 재편 모색▶3단계(96년 이후)는 한국군이 방위의 주도적 역할 수행 등 단계적 감축 구상을 담았다.

또 작전권 이양의 경우에는 ▶평시작전권 한국에 이양▶한.미연합사 예하 지상구성군사령관과 군사정전위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군 장성으로 교체키로 했으며, 이후 그대로 집행됐다.

미국은 이 전략구상에 따라 92년 공군병력 2천명과 지상군 중 비전투병력 5천명 등 7천명을 감축했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자 빌 클린턴 대통령은 94년 주한미군 감축계획에 쐐기를 박는 새로운 동아시아 전략구상을 의회에 제출, 주한미군 감축론은 다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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