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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시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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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라퐁테느」의『우화시』에 이런 얘기가 있다. 너무 극성스러운 고양이 때문에 살길이 어려워진 쥐들이 회의를 가졌다.
한늙은 쥐가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아 놓는게 좋지 않겠느냐는 묘안을 내놓았다. 만장일치로 이안은 채택되었다. 그러나 방울을 달겠다고 나서는 쥐는 하나도 없었다. 결국 아무 결정도 내래주지 못한채 회의는 끝났다.

<망울을 못단 상황>
오늘날의 우리나라 작가들의 상황도 이 우화의 뜻과 관련되어있는 것만 같이 생각된다. 다만 고양이의 목에 달려던 방울인지 또는 방울을 달자고 제안한 늙은 쥐인지, 흑은 또 방울을 달아야겠다면서도 달지 못한 쥐들이 작가들의 모습인지가 분명치 않은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결국 방울을 달지 못했다는것, 그리고 방울을 달지 못한 이상 아무리 열띤 회의가 거듭됐다하더라도 쥐의 운명에는 조금도 변함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작가에게 있어 가장 아쉬운 것은 자유스런 공기다. 혼탁한 공기에 대해서 가장 민감한 것도 작가다. 지금까지 가장 목청높이 방울을 달아야겠다고 경고해온 것이 작가들이다. 그러나 방울을 달기 제일 두려워했던 것도 작가가 아닌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두개의 이유가 여기에는 있다.「버너드·쇼」의 희곡 『실연의 집』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근대적 교양을 받고 혁명적 사상에도 친화감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스스로의 생활을 개혁하고 국가나 사회를 어떻게 하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는 것이나 아닌가. 그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는 것으로 흡족하고있기 때문이나 아닌가 생각된다.

<엄두못내는 이유>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이유, 작가로 하여금 숨막히게 만들고 방울을 달아맬 엄두도 못내게 만들어주고 있는 이유는 또 하나있다.

<「슬로건」주변>
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모든게 구호로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일체의 사유를「슬로건」 으로 바꾸어 놓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현대인의 정신적 태타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것은 사고의 생략을 통하여 통제를 보다 수월하게 만들려는 일종의 위장된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 개인을 몰아넣은 것은 작가는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런 상황으로부터 개인을 구해내는 방안을 생각하고 고심하는게 작가의 책임임을 숨길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줄 알면서도 오늘의 작가는 글을 쓰지 못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모든 것을 증오하는 것만으로 그치고 있다.
누구나가 다 이해하고, 이해하기 때문에 자진해서 복종할만한 진실 없이는 모든 질서는 조야한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은 조만간에 진실에의 욕구 때문에 무너지기 마련인 울타리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이런 울타리에 사방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 오늘의 작가들인 것이다.

<작가가 갖는 고독>
그러기에 오늘의 작가들은 더욱 소외감을 짙게 느끼고 있다 그러기에 더욱 오늘의 작가들은「아이러니」의 세계를 가까이하고 있는 것이다.
도시, 작가가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그가 살고있는 사회가 그에게 강제하고있는 가치와 상식에 대한 다시없는 저항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노래 없는 속에서 노래를 찾아야하는 고통이 그를 더욱 고독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보다 더 깊은 고통은 그나름의 새로운 방향과 가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리고 또 자기는 혼탁하다고 느껴지는 공기를 조금도 혼탁하다고 느끼지 않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마셔 나가야한다는 것이 더욱 견딜 수없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고있는 것이다.

<「써야한다」 는 것>
그러나 작가는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고 써야한다. 쓴다는 작업을 통해서만 그는 자기의 유일한 존재이유를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공기를 혼탁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것인지를 굳이 밝힐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숨막히게 만들어주고 있는가를 가려낼 필요도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얼마나 숨막힌 것인지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살아가야만 하는지를 밝혀낼 필요는 있는 것이다.
작가의 싸움은 여기서부터 비롯해야 할 것이다. 사랑과 명예와 신뢰가 사라진게 오늘이라면 그런 것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작가는 그려내야 할 것이다. 만일에 그렇지 못 하다면 공연히 고양이의 목에 방울을 달자고 제안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말로「엘리어트」의 말대로『꼭 무엇이 승리하리라는 기대에서보다도 남아있는 것을 살려내기 위해서』 라도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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