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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 스타] 배우 감우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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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저기, 3번 훈련생 열외!"

해병대 조교의 명령이 떨어졌다. 배우 감우성(33)이 대열에서 튀어나왔다. 철모를 깊게 눌러 쓴 까닭에 처음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모자를 벗으니 예의 부드러운 얼굴이 나타났다.

땀에 전 군복의 감우성. 산비탈을 몇차례 뛰고 온 후라 가쁜 숨을 몰아쉰다. 얼굴도 약간 그을렸다. "휴, 힘들어. 인터뷰 좀 오래 하면 안되나요."

유머가 있다. "피부가 얇아서 그런지 추위가 뼈에 스며들어요." 엄살이 심하다고 했더니 "한번 해보세요. 안 겪으면 모른다니까…"라며 고개를 젓는다.

지난 주말 영종도 신공항 인근의 야트막한 야산. 그곳 예비군 훈련장에서 감우성은 2박3일간의 군사훈련을 받았다. 해병대 아카데미에 입소한 것. 오는 3월 촬영에 들어가는 전쟁 공포영화 'R-POINT'(감독 김동빈)에 필요한 훈련 코스다. 제식훈련.매복.은폐.엄폐.사격.정찰.독도법.수류탄 투척.무전기 작동 등 각종 전투 지식을 쌓았다. 지난해 '해안선'의 장동건도 비슷한 과정을 이수했다.

"7년 만에 군복을 입었더니 잘 적응이 안되네요. 신병 훈련소는 1등으로 수료했는데…. 보병 병장으로 제대했거든요."

감우성과 군복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많은 드라마에서 나긋나긋한 미소를 주로 보여주었던 그가 강인한 군인역을 맡다니…. 지난해 영화 데뷔작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바람둥이 대학강사와도 상반된 캐릭터다.

"워낙 개성이 없어서 그런 이미지를 풍겼을 겁니다. 부드럽다는 말 빼고 달리 표현할 게 없었나 봐요. 하지만 그건 선입견입니다. 배우를 한두 단어로 규정할 순 없죠."

'R-POINT'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독특한 공포영화다. 전쟁의 후유증을 다룬 '하얀 전쟁''디어 헌터', 병사간의 반목.갈등을 그린 '플래툰' 등과 달리 실종된 병사를 찾아나선 소대원에게 들이닥치는 정체 불명의 귀신, 이런 섬뜩한 상황에 빠진 병사의 심리적 공황 등을 담아낼 계획이다. 감우성은 전투 경험이 풍부한 소대장 최태인 역을 맡았다.

"스펙터클한 전쟁영화가 아닙니다. 물량으로 할리우드와 승부할 수 없죠. 전쟁이란 극한 상황에서 점차 파멸해가는 병사의 황량한 내면을 드러낼 겁니다. 최민수 스타일의 카리스마를 강조한 영화가 아닌 거죠."

감독이 거들었다. "전쟁에 어울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생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젊음의 순수한 영혼을 잃어버리는 인물로 감우성이 적격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감우성의 비유도 재치있다.

"분위기는 SF 호러 '이벤트 호라이즌', 진행은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소대원 간 갈등은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전쟁의 사상자들'과 비슷한 곳도 있을 겁니다."

아직 걸음마도 떼지 않은 영화라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그간 작품에 대한 연구는 제법 축적한 모양이다. 요즘 관객의 눈높이가 장난이 아닌 만큼 최소한 흠집이 많지 않은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제목의 R-POINT는 베트남 남부의 격전지였던 나트랑에 실존했던 지역. 미군.프랑스군.베트남군 등의 혼령이 출몰했던 곳으로 소문이 났다고 한다. 영화는 캄보디아.베트남에서 1백% 현지 촬영된다.

"설 연휴 직전 닷새간 현장을 다녀왔어요. 현지 준비가 거의 완벽한 만큼 큰 걱정은 없습니다. 숙박 시설이 없어 대형 텐트에서 생활해야 해요. 영상 4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가장 큰 적이겠죠."

그는 현역 시절 군홍보 영화를 열여덟편이나 찍은 경험이 있어 장르 자체가 생경하진 않다고 말했다. 전쟁과 공포라는 두 단어의 기묘한 만남을 기대해도 좋다고 자신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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