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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생지옥…가변의 호곡|산청 버스사고 현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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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산청 사고현장∥여운·박재홍·신태성·최명상 기자】70도가 넘는 깎아 세운 듯 한 절벽 바위에 세 번이나 구른「버스」는 강가 배추밭에 형체도 알아 볼 수 없을이 만큼 산산조각이 난 채 뒤집혔다. 이 사고로 46명의 목숨을 앗아갔으며「버스」천장과「시트」는 맞붙어버렸고 차바퀴와 차창「보넷」등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버스」가 구르는 사이 모두 차 밖으로 튀어 나와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의 목과 팔·다리 등이 처참하게 널려 있고 피투성이 부상자들의 울부짖음이 뒤섞인 강변의 오후는 생지옥을 방불케 하는 참경이었다.

<경관과 주민 총동원>
이날 함께 장지에 갖다 뒤따라오던 다른 전세「버스」가 3킬로쯤 떨어진 신안 지서에 사고를 알려 경찰관 1백여명과 예비군까지 동원, 최경남 도 경찰국장 진두지휘로 철야구조작업을 벌였다. 뒤늦게 사고소식을 전해들은 인근주민 수백명이 횃불을 들고 나와 비춰 구조작업을 도왔고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는 울부짖음이 어둠 속을 헤치고 곳곳에서 들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의 일>
32명의 부상자 가운데 전치2주 정도의 찰과상만 입은 김부갑 노인(65·신안면 장죽리)은 운전사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차가 막 고개를 넘어섰을 무렵 앞에서「버스」한 대가 마주 올라오다 산 쪽으로 붙어서는 순간 갑자기 차체가 기우뚱하며 정신을 잃었다고 말했다.
김 노인이 눈을 뜬 것은 병원 침대 위에서였다

<한마을서 27명 희생>
이번 사고로 생비양면에서 27명의 희생자를 냈으며 도리마을에서는 14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밖에 신안면에서 13명이 죽고 단성면에서 1명 등 희생자는 모두 3개면 에만 몰려 있었다.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노인과 장년들. 장례 술에 취한 유족들은 현장에 달려와 실신한 사람처럼 날뛰며『운전사와 차주 나오라』고 아우성을 쳤다.
생비양면도리 정시동 노인 (76) 집에서는 정 노인을 비롯 동생 정창식씨(75)와 창식씨의 아들 도명씨(41)등 일가족 3명이 죽었다.
사망자 (46명)
▲산청군생비양면도리 (14명) 이연옥 (여) 김인갑 백도열 이조현 이경남 (여) 정시동 임원경 이영천 김인영 김정문 백한순 정서리 박철웅 임성규(65·민욋과서 절명) ▲생비양면도전리=이상옥 조용선 강갑생 유천우 이명위 이또분 정차문 김또복 조한용 이복배 오용호(62) ▲신안면장죽리=이상균 (68) 이우정일 오용돌 ▲신안면중촌리=이종문 (56) 도성용 도기석 ▲신안면소이리=양차석 이만수 (76) 이성진 (61) ▲생비양면화현리=오택용 ▲생비양면대둔리=서정문 서정채 이운위 ▲신안면하정리=곽복열 점민열 김남이 ▲신안면문대리=이삼석 ▲신안면청현리=도재도 (56·운송중 절명) 제영수(여·67·운송중 절명) 이수복(58) ▲단성면 성내리=송사영(65·도립병원서 절명)
부상자 (32)
◇민욋과▲권순천(40·신안면청현리) ▲최윤상(63·동) ▲이기호 (44·동) ▲차석(70·동)▲도진국(50·중촌리) ▲이태호 (64·동) ▲김봉춘(63·생비양면화현리) ▲정환이(29·동) ▲이인세(12·화현국교4년) ▲김진행(51·도전리) ▲조장식 (동) ▲이희도(35·동) ▲박종록(42·문대리) ▲유용업 (중촌리) ▲김기선(57·도전리)
◇김윤환의원▲김갑이(65·신안면중촌리) ▲도주갑(57·산청면) ▲정몽룡(44·도전리) ▲서정아(58·동) ▲이정용(53·중촌리) ▲오남근(73·도전리) ▲김두갑(63·신안면장죽리) ▲이상기(49·동소이리) ▲이형문(46·도전리) ▲오정근(44·동) ▲서정기(45·동) ▲김태화(50·신안면소이리)
◇진주도립병원▲이갑주(64·진양면반성리) ▲김갑옥(45·도전리) ▲이종이(44·동) ▲서만석(33·운전사) ▲송호정·(여·20·차장)▲임하재(51·도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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