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장관 사실상 수사 지휘" 수사팀 한때 불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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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법무장관

퇴임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전 정부 국가정보기관 수장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지난 4월 18일 출범한 서울중앙지검 국정원 정치·선거개입 의혹 수사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지난달 말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신병처리 방향을 보고했다. 국정원직원법과 선거법 위반 혐의를 모두 적용하고 구속영장도 청구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거법을 적용하되 불구속 기소한다’는 최종 결정은 그로부터 보름 뒤에나 나왔다. 55일간의 수사 기간 중 3분의 1가량을 사법처리 수위와 방향 조율에 썼다. 그 보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당초 수사팀이 ‘선거법 적용·구속영장 청구’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자 검찰 안팎에선 곧 수사 결과 발표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일주일쯤 뒤 검찰과 법무부 간의 ‘갈등설’이 불거졌다. ‘특수통’인 채동욱 검찰총장은 수사팀 의견에 동의했지만 ‘공안통’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제동을 걸었다는 얘기였다.

 이에 대해 검찰 지휘부는 “선거법을 적용하는 법리가 무척 까다로워 보강수사를 벌이는 것”이라며 갈등설을 부인했다.

 문제의 공직선거법 조항은 85조 1항 ‘공무원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사팀은 국정원 직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해 원 전 원장이 취임 후 ‘종북좌파’ 척결을 최우선 목표로 지시했으며 이 과정에서 야권 인사들까지 종북좌파로 규정했다고 봤다. 또 각종 선거에서 이들의 당선을 막는 활동을 ‘상습적’으로 벌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황 장관과 일부 간부는 “원 전 원장이 직접 지시한 증거가 없다”며 보강 증거를 요구했다.

 이후 공소시효를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 있는 데드라인(9일)을 넘어서도 결론이 나지 않자 “황 장관이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있다”는 불만까지 터져나왔다. 검찰청법상 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선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은 강정구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사건과 관련해 문서로 ‘불구속 수사’를 지휘했었다. 당시 수사 책임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바로 황 장관이었다. 검찰과 법무부는 모두 “이번 사건에선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었을 뿐 수사지휘권의 발동은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양측은 파국을 원하진 않았다. 결국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는 적용하되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는 절충안에 합의하면서 보름간의 줄다리기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황 장관도 채 총장도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황 장관에 대해선 “지난 대선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 것을 우려해 선거법 적용을 반대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취임 초 ‘정치중립’을 강하게 내세웠던 채 총장도 수사팀과 장관 사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채 총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이날 오후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은 사실이 아니다”며 “충분한 내부 논의 끝에 검찰 책임하에 내린 결정”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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