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경제] 전력 왜 부족한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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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일러스트=강일구]

Q 요즘 전력난이 심각하다고 합니다. 특히 올여름에는 시험성적서를 위조한 부품을 사용한 원자력발전소의 가동 중단으로 전력 사정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는데요. 전력도 사고파는 시장이 있나요. 그렇다면 왜 전력이 이렇게 부족해진 건가요.

A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예비전력을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돈이 갑자기 필요할 때를 대비해 여유 자금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보통 정부는 공급할 수 있는 용량에서 차지하는 여유분(예비전력)이 15%는 돼야 적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만약 갑자기 일부 발전소가 멈춰 서 공급량이 줄거나 무더위 등으로 온도가 올라 수요가 크게 오를 때를 대비한 것이지요. 그런데 요즘 일부 원전 가동 중단 등으로 전력난에 시달리고 있어요. 예비전력이 5% 정도로 떨어질 때도 많습니다. 만약 이런 때 발전소가 한두 곳이라도 정지하게 되면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이 발생할 수도 있답니다.

예비전력 15%는 돼야 적정 수준

 국내 전력도 사고파는 시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좀 독특해요. 수요자는 한 명인데 공급자는 여러 명인 ‘수요 독점’ 형태예요. 보통 경제학에서 경쟁 시장을 말할 땐 수요와 공급 곡선이 만나는 곳에서 공급량과 가격이 결정된다고 하지요. 그런데 수요자가 한 명이니 수요자가 ‘난 이 가격 아니면 이 물건을 안 사겠다’고 버티면 공급자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격을 낮춰서 공급할 수밖에 없겠지요. 이를 영국의 경제학자 J V 로빈슨은 ‘수요독점적 착취’라고 불렀지요.

 경제학적으로 보면 수요독점 시장은 공급자가 손해 보는 시장입니다. 이런 시장에선 공급자가 하나 둘 떠날 겁니다. 이익이 많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런데 국내 전력시장에는 많은 대기업이 서로 진출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국내 전력 도매시장은 가격이 독특하게 결정됩니다. 전력을 사는 곳은 한국전력 한 곳뿐인데 전력을 파는 발전사업자는 446개 사(2012년 기준)입니다. 지난해 전력 거래대금도 42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2001년 이전엔 한전 혼자서 수요와 공급을 모두 담당했지요. 한전이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들인 뒤 이를 일반 소비자에게 제공합니다.

전기 절약 외에 다른 방법 없어

 국내 시장은 다른 나라와 달리 ‘난 이 가격에 팔겠다’는 입찰가격이 아니라 발전기의 연료비에 의해 가격이 결정됩니다. 발전소는 원자력·석탄·석유·LNG 등 사용 연료에 따라 종류가 달라집니다. 당연히 연료비도 다르겠지요. 1㎾h당 연료비는 원자력은 4원인데 석탄은 35~50원, LNG복합은 130~160원이고 경유는 무려 350원에 달합니다. 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연료비가 발전소에 따라 80배 이상 차이가 나지요. 이 변동비(연료비)에 각 발전소의 발전 가능 용량을 환산한 고정비(용량가격)를 더한 것이 전력 가격입니다.

 전력은 비영리특수법인인 전력거래소에서 거래됩니다. 그런데 발전소의 변동비(연료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연료비는 미리 정해둡니다. 전력거래소는 하루 전에 전력 수요를 한 시간 단위로 예측하고 발전소로부터 ‘이만큼 공급할 수 있다’는 입찰을 받습니다. ‘○○일 오전 10시 5500만㎾, 오전 11시 5700만㎾…’ 같은 식으로 예측하지요. 이렇게 다음 날 전력 수급을 미리 결정해 놓습니다. 보통 전력이 필요하면 연료비가 낮은 원자력발전소부터 시작해 석탄 등의 순으로 투입됩니다.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전력이 부족할 땐 어떨까요. 연료비가 많이 드는 경유발전소도 완전 가동해야 할 겁니다. 이럴 땐 연료비가 엄청나게 비싸지겠지요. 해당 시간대 변동비(연료비)는 제일 비싼 발전소의 연료비로 결정되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오전 10시에 LNG까지 가동해 연료비가 130원이었는데 오후 3시에는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 경유(연료비 350원)까지 가동했다면 오전 10시에는 모든 발전소가 연료비로 130원을, 오후 3시에는 350원을 받게 될 겁니다. 개별 발전소 입장에서는 전력이 부족할수록 많은 돈을 받으니 기분이 좋겠지만 한전 입장에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니 부담이 커질 겁니다. 그래서 전력난이 가중되면 발전회사가 미소 짓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지요. 대기업이 앞다퉈 전력시장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요. 수익이 안정적인 데다 전력이 부족할수록 이익이 많이 날 테니까요.

올해 3월부터 가격 상한제 도입

 일부 발전사가 전력난을 틈타 과도하게 이익을 남긴다는 지적도 있어서 정부는 3월부터 가격상한제를 도입했습니다. 시장 가격이 300원이더라도 가격 상한을 200원으로 했다면 모든 발전회사에 200원을 지급하는 것이지요. 다만 특정 발전회사의 연료비가 250원에 달했다면 연료비가 넘친 만큼(50원)을 추가로 해당 발전소에 지급합니다.

 이렇게 미리 예측해서 전력 거래도 해 두는데 왜 전력난을 겪을까요. 이는 전력의 성질 때문입니다. 전력은 저장이 불가능하지요. 또 매 순간 생산과 소비가 거의 일치하지 않으면 전력 공급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 30년 이상 사용할 발전소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야 합니다. 원자력발전소를 하나 짓는 데 3조원가량이 필요하지요.

전력 저장 못해 발전소 미리 건설해야

 전력은 한순간이라도 부족하면 엄청난 피해를 줍니다. 그래서 항상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예비전력을 15% 이상 두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이렇게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발전소를 미리 지으려면 장기 전력 수요 예측을 해야 합니다. ‘5년 뒤에는 최대 전력 수요가 이 정도 될 테니 발전소를 이만큼 지어야겠다’ 하는 계획도 세우지요. 산업통상자원부는 보통 2년마다 이런 ‘전력 수급 기본계획’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에서 예상한 수요 예측이 실제 수요에서 크게 빗나갔어요. 발전소를 짓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보통 화력은 7년, 원자력은 10년 이상 걸리지요. 이미 7~10년 전에 현재의 수요를 예측해서 발전소를 지어놨어야 하는데 발전소가 그때 수요를 적게 예측했으니 발전소를 덜 지었고 전력 부족 현상을 겪게 된 거랍니다. 지금 당장 전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발전소가 하루아침에 ‘뚝딱’ 세워질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한국의 전력이 다른 나라보다 싼 편이어서 수요가 많이 늘어난 점도 있지요. 정부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지요. 현재로선 전기를 절약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이래저래 더욱 무더운 여름을 맞이해야 할 듯합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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