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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공동체 ‘테제’를 가다 <하>알로이스 원장이 말하는 테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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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테제 공동체의 교회에는 설교단이 없다. 수사의 설교나 강론이 없기 때문이다. 수사들은 대신 공동체 방문자들이 앉는 회중석 중간에 앉아 함께 노래하고 기도한다. 테제 기도 예배의 한 장면. [사진 테제 공동체]
알로이스 원장

프랑스 테제 공동체의 창설자 로제(1915∼2005) 수사의 최후는 비극적이었다. 예배 도중 한 정신이상자가 휘두른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국경과 교파를 넘어 종교간 평화의 메시지를 설파한 로제 수사가 그렇게 삶을 마감한 건 충격적이다.

 남은 이들의 대응은 테제다웠다. 『떼제로 가는 길』을 쓴 미국 신학자 제이슨 산토스는 마침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 그는 “어리둥절한 느낌이 들 정도로 테제 수사들이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사태를 수습했다”고 책에 썼다.

 공동체의 원장 자리는 즉시 독일 출신의 알로이스(59) 수사가 물려 받았다. 일찌감치 후계자로 지명된 그는 안 그래도 2005년 중에 원장직을 승계할 예정이었다.

 취임 이후 알로이스 원장은 세계 곳곳에서 ‘신뢰의 순례’ 행사를 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테제 바깥에서 현지인과 함께 모임을 열어 테제의 철학을 확산하자는 취지다.

 지난달 23일 오전 알로이스 원장을 만났다. 그의 집무실에서다. 생전 로제 수사가 사용해, 테제를 찾는 젊은이 누구나 한 번쯤 들어가 보고 싶어하는 방이다. 알로이스 원장은 인터뷰 직후 미국 사우스다코타로 출발한다고 했다. 인디언 원주민들과 신뢰의 순례 행사를 열기 위해서다.

테제 공동체의 소박한 숙소(위 사진)와 아침 식사. 3인실은 좋은 편에 속한다. 아침은 빵·버터·초콜릿·핫초코가 전부다. [테제=신준봉 기자]

 -테제의 찬송가가 특히 아름답다.

 “테제에서 노래는 오랜 전통이다. 로제 수사는 공동체에 자기 혼자 있던 시절부터 노래를 즐겨 불렀다고 한다. 1970년대 들어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테제만의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도 가끔 노래를 만든다. 새 노래가 만들어지면 적응 기간을 거친다. 이때 노래가 다듬어지기도 하고 아예 목록에서 빠지기도 한다.”

 -침묵기도는 좀 버겁다.

 “그 시간에 뭘 하건 자유다. 반드시 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침묵기도 시간에 교회 안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이해하는 기도를 하는 거다. 단순히 하나님을 생각하는 시간이 아니다. 당신의 얘기를 하나님께 털어 놓는 시간이다. 침묵기도 직전엔 반드시 성경 구절을 읽는다. 그 구절을 떠올림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기도 하다.”

 -젊은이들이 많아 조용한 수도원 같지는 않다. 신앙에 회의적인 방문자는 없나.

 “테제에는 두 개의 공간이 있다. 공동체는 무엇보다 수도원이다. 70여 명의 수사가 기도와 노동을 하는 공간이다. 이쪽은 조용하다. 다른 한 쪽은 젊은 방문자들의 공간이다. 물론 이들 중엔 신앙에 회의적인 친구들도 있다. 처음 그들은 이곳 생활을 즐긴다. 멋지지 않나. 다양한 또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국제적인 공간 아닌가.”

 - 그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나.

 “방문객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예배에 참석하면서,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어야 하나, 생각하다가 자신의 인생과 신앙에 대한 깊은 질문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젊은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자신 안의 질문을 꺼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사실 이곳 생활은 불편하다. 재미로 와서는 이틀을 못 버틴다.”

 알로이스 원장은 “유럽이 겪는 신앙의 위기가 젊은층의 교회 이탈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젊은이들은 새로운 형식의 신앙을 원하는데도 기존 교회가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결국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설명이다.

 - 그런 젊은이들을 돕는 방법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거다. 방문자들은 군중 속에 섞여 있지만 모두 개별적인 존재다. 각자 고통과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질문들을 안고 온다. 여기 오면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어떤 판단도 내리지 않고,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도 하지 않고 그저 그들의 얘기를 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자존감과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된다. 저녁 기도 후 일부 수사들이 교회에 남는 이유는 듣기 위해서다.”

 -테제는 언제부터 젊은이들에게 인기였나.

 “대략 1960년대부터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기존 질서에 항거한 68혁명이 프랑스를 휩쓸었을 때 젊은층은 신앙 문제에 있어서도 새로운 걸 찾기 시작했다. 로제 수사는 그들을 환영했다. 그들의 얘기를 기꺼이 들었다. 심지어 기독교에 비판적인 젊은이들에게까지 머물 공간을 내줬다. 그게 계기가 됐던 것 같다.”

 -테제는 대안 교회인가.

 “교회들 사이에, 그러면서도 교회 안에 있기를 원한다. 우리는 교회 바깥의 신앙 운동 조직이 아니다. 결국 자기 교회로 돌아가기 위해 거쳐 가는 특별한 공간일 뿐이다.”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는 이유는.

 “우리는 섬처럼 고립된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신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만들어졌다. 내 생명을 내가 창조했나. 아니다. 받은 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주변에서 받는 거다. 생존을 위해 주변에 의존해야 하는 인간의 한계는 절대적 사랑에 대한 목마름(thirst)으로 이어진다. 어떤 인간도 근원적인 나의 목마름을 가라앉힐 수 없다.”

 -테제도 사람 사는 곳이다. 수사들 사이에 갈등은 없나.

 “슬프게도 그런 일이 있다. 그럴 땐 굳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둔다. 문제와 함께 산다. 우리의 삶이 항상 잘 돌아가는 건 아니다. 그게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갈등은 좋은 것이다.”

테제(프랑스)=신준봉 기자

◆테제 공동체=스위스 출신 로제 수사가 1940년 창설한 초교파 기독교 신앙 공동체다. 프랑스 중동부 테제 지역에 있다.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는 전세계 젊은이들이 해마다 10만 명씩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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