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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침착했더라면|동료 잃고 살아남은 김형옥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기적적으로 살아난 김형옥군(20)은 동료7명을 잃은 조난사고의 원인은『처음 가랑비가 내릴 때 상황을 잘 판단하지 못한데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형옥 군은 출발에서부터 조난까지의 경위에 대해서『침착했더라면』하고 후회하고 있다.
이들 일행 9명은 성동역에서 22일밤 8시20분 차로 춘천에 도착, 하룻밤을 자고 23일 상오5시「버스」로 춘천을 떠나 상오10시쯤 인제군 북면 남적리에 도착, 곧 십이선녀탕 골로 등반을 시작했으며 하오4시쯤 제8탕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기서 하룻밤을 새웠다. 이때의 날씨는 등산에는 다시없는 좋은 날씨였다 한다.
24일 아침에 이들은 서울의대생5명이 등산하는 것을 보고 약30분 후 등산을 시작했는데 이때 날씨가 흐리고 가랑비가 내렸으나 앞서간 서울의대생들의 등산에 기운을 얻어 계속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 한시간 뒤 짙은 눈비에 시야가 흐리고 진눈깨비가 마구 쏟아져 당황하고 있는 참에 간신히 제9탕 못 미쳐 작은 동굴을 발견, 9명이 여기서 비를 피해 24일 밤을 새웠다.
처음 불을 피웠으나 물이 흘러들어 꺼져「바너」로 불을 피웠다는 것이다.
동이 트자 예정대로 올라가자는 의견과 후퇴하자는 의견으로 갈렸으나 곧 하산 하자는데 의견을 모아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밤새 물이 불어 건너온 계곡을 건널 수 없어 4개의 산봉우리를 타면서 하오3시쯤 제2탕까지 하산했다는 것이다.
이때는 전원이 기진맥진했고 처음「리더」인 김신철군이 실신, 쓰러졌으며 꼬집어도 의식이 없었다.
여기서 대원들이 당황했고 김군과 민병주군이 조난신고를 하자고 먼저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두 사람은 앞에 2미터 높이의 바위가 가로막힌 대목에서 김군은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으나 민군은 오르지 못했다. 바위에 오른 김군은 곧 의식을 잃었다는 것이다.
김군은 깨어보니 옆에는 홍정순양이 와 있었고 바위 밑에는 민군이 머리를 거꾸로 죽어있었다는 것이다.
김군과 홍양은 다시 기운을 차려 하산하다 논에서 일하는 이상운씨를 발견하고는 엎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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