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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본 한국작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이웃 일본문학계가「노벨」문학상의 영광으로 빛나자 한국번역 문학의 불모성이 새로운 뜻에서 충격을 가져왔다.「가와바다」씨의 수상소식은 그 자체의 의의보다 일본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지류률 이룰 만큼 널리 알러졌다는 사실로, 거의 문맹상태에 있는 한국문학의 대외인식 상태와 비교해서 우리 문단에 충격을 준 것이다.
최근에 내한, 한국문학작품의 영역전망을 알아보고 있는 미국의「아시아」연구협회「아시아」문학부장「보니·크라운」여사는 우리문학작품이 구미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한국어와 영어에 다같이 능통하면서 양쪽 문학까지도 통달한 유능한 번역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있다. 이점에서 보면 일본문학은 훨씬 다행했다. 미국은 점령국의 입장에서 일본인을 대했기 때문에 오랜 평화가 계속되는 동안 안정된 상태에서 일본문화를 맞이했고 지난 10여년 동안은「일본 붐」이 일어날 정도였다.「아시아」연구협회에서는 번역대상으로 잡은 한국문학작품들의「리스트」를 작성해놓고 있지만 현재 번역이 진행중인 것은 한국 시조집·문학선집·「사상계」논문집 등 셋 뿐이다. 이 번역사업에는「리처드·러트」 신부, 「마셜·필 등 모두 외국인들뿐이라고 한다.
번역가와 작가가 체험한 문화의 차이, 작품 속에 담긴 상징법, 인유등 허다한 번역상의 난관 때문에「크라운」여사는 미국인과 한국인이 공동으로 작품번역을 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라고 보고있다.
외국인으로서 한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자연을 보고 한국어를 배우고 그리고 거처도 아예 한국식 여관으로 정했다는「크라운」여사는 기자가 찾아갔을 때 치마를 입고 방구석에 가득 쌓인 한국 관계서적 속에서 부드럽게 웃고있었다.
「크라운」여사는 또 번역문학이 과연 진정한 뜻에서 문학일 수 있느냐는 일부 문필가들의 회의에 대해 두 가지의 신념을 표시했다. 첫째 번역문학을 부인할 때 세계문학의 4분의 3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데 그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고, 둘째 문학작품을 번역하고 번역작품을 읽는 행위자체가 새로운 문학적 체험이 되므로-예를 들어 미국적인 감수성 (센시빌리티) 은 한국문학 작품에 접함으로써 더욱 확대·충실해진다는 것이다. 옳은 의미에서의 세계문학이란 바로 그러한 이질적「센시빌리티」의 계속적인 접촉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9년동안 시낭독회·연구논문 발표 등을 통해 한국문학작품들을 접해왔다는「크라운 」여사는 12월까지 체한 하면서 69연중에 발간한「동서의 문학」이라는「아시아」연구협회 계간지의 한국문학 특집을 위한 원고를 모으겠다고 한다. <장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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