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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욕의 점철 2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21일로 경찰은 창설23돌을 맞았다. 일경의 「사벨」이 경찰봉으로 바뀌고 민중의 공복이 되기를 다짐하며 새출발한 「새나라의 새경찰」이었지만 걸어온 23년은 문자그대로 영욕의 점철이었다.
들뜬 민심이 질서를 파괴하고 공산도당들의 암살·「테러」사건이 잇달아 일어난 건국전야와초기, 이무렵의 경찰의 활동은 『반공조국의 초석을 닦았다』하여 지나친 말이 아니었다.
3·1절좌익난동사건, 철도대파업사건, 10·1대구폭동사건, 제주도 4·3사건, 여·순반란사건 5·10선거방해사건, 국회 「푸락치」사건에 피투성이로 대결했다. 6·25동란을전후해서는 공비와 남침 「게릴라」를 소탕하고 후방치안을 지키다가 1만1천3백여명이 목숨을 바쳤다. 그러나 휴전협정이후 정치에 개입하는 운명이 되어 초창기의 공든탑도 보람없이 무너졌다.
4·19 5·16등 두차례의 혁명은 이같은 경찰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해부시켰다.
하지만 경찰 불신풍조는 세월이 흘러도 좀처럼 가시지를 않았고 오늘날에 와서는 인력부족의「딜레머」에까지 빠지고 있다.
지난 58년에비해 인구는 35%, 각종 사고발생건수는 4.5배(연평균 증가율 35.3%)로 늘어났는데도 경찰관수는 당시의 3만9천7명에서 4만1천3백95명으로 2천3백88명(연증가율 0.64%)밖에 증가되지 않았다.
경찰한사람이맡는 인구비율로 봐도 미국이 5백65대1, 영국 5백47대1, 서독4백34대1, 일본이 6백79대 1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무려 7백42대1이나 된다.
창설당시 2인승 삼륜차정도가 고작이었던데 비해 지금은 항공기 12대를 비롯, ○○척의 경비정, 1천3백여대의 차량이 있다. 특히 1·21사태이후로는 전투경찰무장이 모두 자동화기로 바뀌고 연내에 5백만「달러」상당의 신장비가 도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는 주로 경비·작전에 관한 것으로 수사장비는 여전히 감감소식이다.
치안국은 수사장비 5개년계획을성안, 감식차량등 79종의 수사장비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은 한푼도 얻지못했다.
지문감식을 제외하고는 과학수사 무방비 상태라하여 지나치지 않을 정도. 이러다가는 「범인조작」, 「피의자고문치사」에, 얼핏하면 미궁에 빠지는 살인사건등의 사례가 오히려 당연하다는 역설이 나올지도 모른다.
지난57년에 범죄발생 총건수의 93%이던 검거율이 67연도에는 81%로 떨어졌다.
『봉사와 질서를 「모토」로하는 민주경찰을 구현하고 싶어도 ①인원부족 ⓩ수사·교통·통신등의 장비부족 ③업무량에 비해 적은 박봉등이 큰 장벽이라』고 안갑준 치안국 경무과장은 실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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