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현욱의 과학 산책

무엇이 진짜 죽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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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

“사망진단의 기준에 대한 국제적 합의가 필요하다.” 최근 유럽마취의학협회 회의에서 저명한 의사들이 이같이 촉구했다고 지난주 영국 BBC 뉴스가 보도했다. 영국 프렌체이 병원의 알렉스 마나라에 따르면 사망 진단이 내려진 뒤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례가 의학문헌에 나타난 것만 30건이 넘는다. 통상 사망진단은 심장박동과 호흡이 멎고 눈동자가 풀려 있어 불빛에 반응하지 않는 것을 근거로 삼는다. 이에 더해 의사가 5분간 환자를 지켜보는 것을 국제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드물게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저절로 다시 시작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학의 발달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점점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2011년 ‘소생(Resuscitation)’ 저널에 실린 일본 여성(30세)의 사례를 보자. 그녀는 오전 8시32분 숲 속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체온은 섭씨 20도였다. 의사들은 그녀에게 아드레날린을 주사하고 특수 심폐소생기계에 집어넣었다. 오후 2시57분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3주 후에 퇴원했다. 후유증은 ‘신체 왼편에 약간 힘이 없는 것’이었다. 1999년 스키를 타던 중 강에 빠진 노르웨이 여성 안나 바겐홀름도 비슷한 예다. 얼음 밑에 80분간 갇혀 있으면서 심장이 멎었고 체온은 정상보다 20도 낮았다. 병원에 공수된 그녀를 살리기 위해 의사들은 9시간 동안 노력했다. 혈관에 기계를 연결해 몸 밖에서 피를 데운 다음 정맥에 다시 주입했다. 체온이 정상에 가깝게 회복되자 그녀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미국 스토니브룩 대학의 소생연구팀장인 샘 파리나는 “심장이 뛰지 않은 채 20분이 지나면 뇌에 치명적 손상이 온다고 알려져 있지만 뇌는 산소 공급이 중단되면 동면 상태에 들어가 더 이상의 손상을 피한다”면서 “적절한 소생 조치를 취하면 정상인으로 회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사례와 달리 심폐기능이 인공장치로 유지되는 환자에겐 뇌사 개념을 이용한다. 뇌의 활동 여부를 신경학적으로 검사한다. 하지만 판정 요건은 나라마다 다르다. 캐나다에선 의사 1명이면 되지만 영국은 2명, 스페인은 3명이 있어야 한다. 신경학적 검사의 횟수, 사망을 선언할 때까지 환자를 관찰해야 하는 시간도 각기 다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 마취의학과의 리카르드 발레로 교수는 “뇌사를 진단하는 국제적 합의를 도출해낼 추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이번 회의에서 강조했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