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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북한 핵·미사일 해결 협력을” 시진핑 “새 모델 강대국 관계 맺어야”

중앙일보

입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7일(현지시간) 335분(5시간35분)을 함께 보냈다. 역대 미·중 정상회담을 통틀어 하루에 만난 시간으론 가장 길다. 미 캘리포니아 남쪽 휴양지인 랜초미라지 서니랜드에서 7일 오후 5시10분(현지시간)에 만난 두 정상은 1차 회동(180분)→기자회견(40분)→만찬(110분) 등을 거쳐 밤 10시45분에야 헤어졌다. 만남이 길었던 만큼 주고받은 대화도 많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 문제부터 사이버 우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슈를 다뤘다”고 했고, 시 주석도 “국내외 정책과 경제·군사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했다”고 말했다. 9월로 예정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의 양자 회담과 별개로 연내에 다시 한번 만나자는 얘기도 나눴다. 시 주석은 “이런 비슷한 만남을 중국에서도 갖자고 초대했다”고 밝혔다.

특히 두 정상은 양국이 갈등·대립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공조하는 새로운 개념의 강대국 관계(중국 표현으론 '신형 대국 관계')를 형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두 정상은 8일 오전 9시에 다시 만나 2차 회동을 했다.

‘서니랜드 회동’ 전에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두 정상이 논의할 최우선 현안 가운데 하나가 북한 문제”라고 예고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제로 모두발언에서 “두 나라가 협력해야 할 도전 과제들이 있다”며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1차 회동 뒤 기자회견에서 오바마와 시진핑은 북한 문제를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북한 문제가 논의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뉴욕타임스는 회담에 배석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차 세션에선 두 정상을 오랫동안 괴롭혀 온 북한의 핵 위협 같은 안보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미국은 중국의 협조를 구하는 데 주력했다”고 보도했다.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공개 발언에서는 제외됐다는 의미다. 남북한이 극적으로 당국 간 대화를 재개하기로 한 상황 변화를 감안해 두 정상이 공개적으론 말을 아낀 것 같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시 주석은 “국내외 안보정책과 관련해 솔직하고, 진지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주고받았다”며 “중국의 꿈은 경제 번영, 국가 개조, 인민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미국의 꿈과 같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관심을 갖고 있는 사이버 해킹을 놓고선 ‘장군 멍군’이 이어졌다. 오바마는 “미국은 모든 국가가 똑같은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하는 동시에 무역이 자유롭고 공정하며 사이버 안보나 지적재산권과 같은 이슈를 함께 해결하는 그런 국제 경제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규칙’에 방점이 찍혀 있었다. 그러자 시 주석은 “미 언론들이 사이버 안보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사이버 문제는 양날의 칼(double edged sword)인데 중국 역시 피해자”라고 맞받아쳤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후변화 문제도 거론했다. 그는 “중국은 경제강국으로 경제 규모가 커질수록 탄소 배출량이 많아질 것”이라며 “기후변화 등의 문제에서 새로운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동에서 시 주석은 오바마 대통령보다 적극적이었다. 1차 회동 모두발언에서부터 의지를 보였다. 그는 메모지도 보지 않은 채 즉석 인사말에서 1972년 미·중 수교 당시를 거론했다. “40여 년 전 양국 지도자들은 정치적 용기와 지혜로 ‘태평양을 넘어서는 악수’를 했다. 중·미 관계는 비바람을 겪으면서도 역사적 진전을 이뤄냈다.” 시 주석이 하고 싶은 말은 그 다음에 나왔다. 그는 “중·미 관계는 지금 새로운 역사적 출발선에 서 있다. 두 나라가 새로운 모델의 강대국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 중국을 미국에 필적하는 강대국으로 꼽은 뒤 ‘신형 대국 관계’를 맺자고 제안한 셈이다.

시 주석에 앞서 인사말을 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부상하는 강대국’으로만 규정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이 강대국으로 평화롭게 부상(rise)하는 걸 환영한다. 앞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두 경제가 건강한 경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오바마도 “두 나라가 상호 이해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관계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1차 회동 뒤 기자회견에선 만남의 성과물이 소개됐다. 첫째가 대화 채널을 자주 가동하자는 대목이었다. 오바마는 “시 주석이나 나나 미·중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맞았다.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진핑은 “상호방문, 양자회담, 편지 교환, 전화 통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화를 하기로 했다”며 “두 나라가 협력하면 세계 안전의 ‘닻(anchor)’이 되고 세계 평화의 ‘프로펠러’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중국의 외교부장과 국방부장이 연내에 방미하기로 했다고도 밝혔다. 회동 결과를 설명하던 중 시 주석은 미·중 간에 220쌍의 자매도시가 있고, 19만 명의 중국 유학생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90여 가지의 정부 간 교류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거론했다.

역사적인 만남이 이뤄진 서니랜드는 모하비 사막지역에 위치한 휴양지다. 7, 8일 이틀간 46도까지 기온이 올라가 폭염경보까지 내렸다. 예고한 대로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격식을 깬 만남을 가졌다. 검은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를 입었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은 ‘노 타이’ 회동이었다. 아무런 의전 절차도 없었다.

하지만 형식은 회동(중국 외교부는 만남을 뜻하는 ‘회오(會晤)’로 표현)이었지만 내용은 정상회담을 방불케 했다. 7일 오후 1차 회동엔 미·중 두 나라의 외교 실세들이 총출동했다. 미국 측에선 존 케리 국무장관, 톰 도닐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롭 나보스 백악관 비서실 부실장, 마이크 프로먼 국가안보 부보좌관, 데니스 러셀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 내정자 등이 회동에 배석했다. 중국 측에선 왕후닝(王?寧·당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정치국 위원,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왕이 외교부장, 추이톈카이 주미대사 등이 참석했다. 왕후닝은 시 주석의 책사로 ‘신형 대국 관계’란 개념을 만든 이다.

통역을 빼면 두 정상을 포함해 7대7 회동이었다. 다만 미셸 오바마 여사가 회담 기간 중 워싱턴에 머무르는 바람에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의 ‘퍼스트레이디 회동’은 무산됐다. 중국 정부는 인권문제가 불거질 것을 의식해선지 회동 시작 전에 미국에 망명한 시각장애인 인권운동가 천광청(陳光誠)의 형과 어머니에게 여권 발급 조치를 취했다.

이날 회동에 대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영국 BBC방송과의 회견에서 “두 정상이 당장의 문제를 푸는 데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인 관계 설정에 주안점을 둬야 한다”며 “두 나라 관계의 전제를 다시 설정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랜초미라지(캘리포니아주)=박승희 특파원
pmas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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