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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20년 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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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미군정청내에 국방사령부설치(45·11·13) ▲남조선국방경비대창설(46·1·15) ▲조선해안경비대창설(46·6·15)
◇국군창설=해방후 미군정하에서 발족한 남조선국방경비대와 해안경비대는 48년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과 더불어 동년9월5일 국군으로서 육군과 해군으로 정식 발족됐다. 이어 49년4월15일 해병대가, 동년10월1일 공군이 창설됐다.
◇여순반란사건=48년10월20일 상오2시 여수에 있던 보병 제14연대의 병기고를 점령한 반란군은 이어 경찰서와 지방치안의 주력을 장악, 먼동이 틀때까지 여수지역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들은 순천도 장악했다. 정부는 육군 제9, 11, 15연대를 출동시켜 동년11월6일 완전진압했다.
◇국군조직법발표로 국방부산하에 육본을 두고 보병 기병 포병 공병 통신 기갑 병참 경리 부관 감찰 군의 헌병 항공 일반등 14개병과를 창설 재정(48·11·30) ▲병역법공포로 각지구병사구사령부설치(49·8·6) ◇6·25동란=50년6월25일 상오4시 북괴군은 38선 전역을 기습하여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눴다.
당시 북괴군은 보병 12만명과 경비대 3만4천명의 지상병력과 전차2백41대 122밀리 야포1백72문 전투기2백11대 비행병2천명및 해군함정 30여척 해군병력 1만명등을 확보한데 반해 국군은 8개사단 병력에 대포90문 경비행기 2O여대 경비정 30여척 그리고 전차는 1대도 없는 보잘것없는 군대였다.
3년간 계속된 6·25동란은 53년7월27일 휴전으로 끝났다.
◇「유엔」군 인천상륙작전감행(50·9·15) ▲서울탈환(50·9·28) ▲평양점령(50·10·19) ▲한만국경선 혜산진도달(50·11·21) ▲중공군불법개입(50·10·26) ▲서울재탈환(51·3·14)
◇반공애국포로석방=5년6월8일「유엔」군과·북괴군사이에 포로협정이 조인됐다.
당시 국내에서는 거족적인 휴전반대「데모」가 별어지고 있었다. 동년6월18일 이승만대통령은 반공애국포로 2만8천여명을 단독적으로 석방시켰다.
◇▲노금석대위귀순=53년9월21일 노대위는 평양동북방에 있는 순안비행장으로 부터 소제「미그」15를 몰고 김포비행장에 무사히 착륙했다.
「미그」15「제트」기를 몰고 자유진영으로 탈출한 것은 처음있던 일인데 당시 미국은「미그」기를 타고 오는 귀순자에게 10만「달러」의 상금을 건 일이 있었다.
◇한미상호 방위조약체결=공산군의 재침이 언제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감안, 정부는 53년10월1일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 미국은 육해공군을 한국의 영토와 부근에 배치케 됐으며 한국은 외부의 무력공격에 대처하여 미국과 공동방위를 하게됐다.
◇헌병총사령부창설(53·3·20) ▲제1군창설(53·12·15) ▲제2군창설(54·10·31) ▲F-86F 5대 최초도입(55·6·20) ▲H-D(헬리콥터)최초도입(58·7·16) ▲81함 인수(59·10·15) ▲61함, 62함 인수(60·11·5) ▲F-86 전천후 요격기 도입(60·11·14) ▲GAR-8유도탄도입(61·5·24) ▲PCE 56, 57, 58, 59함 인수(61·12·15) ▲각 도에 병무청 신설(62·10·1) ▲합동참모회의설치(63·5·20) ▲전사편찬위원회설치(64·2·28)
◇월남파병=64년 7월14일 월남「구엔·칸」수상의 요청에 따라 동년9월11일 1백30명으로 구성된 제101이동 외과병원과 10명의 태권도교관단을 파월한 정부는 65년1월8일 국무회의, 1윌26일 국회결의를 거쳐 비둘기부대를 파견하기로 결정, 동년 2월5일 결단식을 갖고 3월16일 월남에 상륙시켰다. 이어 맹호 청룡 백마부대가 파윌됐다. 현재는 주둔지역 안의 공산세력 소탕뿐만 아니라 월남평정계획지원과 대민지원사업에 주력하고있다.
◇주월한국군사 원조단본부창설(65·1·27) ▲비둘기부대파월(65·2·9) ▲청룡부대결단 (65·9·20) ▲맹호부대파월(65·10·16) ▲주월해군 백구부대창설(66·3·15) ▲백마부대파월(66·8·30) ▲제10전투비행단 3만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수립(66·9·16) ▲한일호와 충남호 충돌(67·1·15) ▲56함 피격침몰(67·1·19) ▲북괴간첩선 격침(67·4·17)
◇북괴무장공비 서울침입=68년1월21일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향해 서울로 침입, 세검동을 지난 고갯길에서 경찰수색대와 충돌한 뒤 도주했다. 군경합동수색대는 국민의 협조로 1명을 생포, 28명을 사살(2명은 동사로 추정)했는데 최규식 종로서장과 이재수 준장등 23명의 우리측이 전사했다.
◇향토예비군창설=21사태와「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이후 고조된 자주국방태세확립의 요청에 따라 68년3월부터 예비군조직에 착수. 4월1일 창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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