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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환경 달라진 금융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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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바야흐로 모든 금융기관이 동일한 상품으로 경쟁을 하는 시대가 왔다.

은행이 주식연동 예금을 홍보하고,증권사는 주식연동 채권을 준비 중이며, 투신사도 주식연동 수익증권을 출시한다고 한다. 보험사도 비슷한 기능의 변액보험을 설계한다.

이들 상품은 예금.채권.수익증권.보험이라는 다른 명칭으로 불리지만 설계방법과 경제적 기능은 같다. 영역별로 분리됐던 금융상품을 통합하게 하는 중심고리는 파생 금융기법이다.

파생 금융기법의 활용에 대해 은행.증권. 보험.투신 등을 영역별로 규제하는 현행 금융규제 체제는 방법론상 근본적인 취약성을 보여준다.

가령 파생기법의 활용을 통한 금융거래 위험이 금융영역 및 금융기관을 넘나들며 옮겨질 가능성을 영역별 규제 법규로 통제할 수 있을까? 미국 엔론의 자산구조는 파생상품 거래를 통해 사실상 금융기관화했던 사실은 엔론의 파산 후에야 비로소 밝혀졌다.

은행이 파생기법을 통해 보험거래의 위험을 인수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다. 또 동일한 상품에 대해 다른 규제 법규가 적용되면, 금융기관은 약한 규제 법규를 선택하고, 파생기법을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금융상품의 거래 위험을 인수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감독기관의 통합과 규제법규의 통합만이 파생 금융기법의 활용에 대한 유일한 대응수단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파생 금융기법의 활용으로 인한 위험의 산업 간.금융영역 간 혹은 금융기관 간 이전가능성을 제대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 체계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법규 위반에 대한 규제 체제로 운영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 방어를 위한 위험의 감시 관리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즉 개별 금융기관에 대해 건전성 위험.업무행위 위험 등 여러 금융위험에 대한 일차적인 관리 및 업무통제 의무를 부과함과 동시에 감독기관에는 각 금융기관이 야기하는 위험의 총체적 감시.감독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특히 금융 위험에 대한 위험관리체제는 금융기관별.금융영역별 그리고 금융산업 전체에 대해 포괄적으로 설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위험관리체제는 단일한 금융감독체제가 아니고서는 달성하기 힘들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가 금융감독위원회.금융감독원이라는 사실상 통합된 금융감독기관(금감위원장이 금감원장 겸임)을 갖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통합 금융감독기관을 잘 들여다보면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노출된다.

가장 큰 문제점은 통합감독기관의 편제가 성격이 다른 조직으로 이원화되어 있고 각각의 조직도 영역별 법규를 반영하는 영역별 감독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공무원 조직인 금감위와 민간 특수법인인 금감원으로 나누어져 있고 금감위와 금감원의 내부 조직은 모두 기존의 영역별 감독법규를 반영해 은행.증권.보험.투신 등의 업무를 관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기능별.위험별 감독체제로 바꾸지 않으면 통합의 목표였던 시너지 효과를 달성할 수 없다. 이미 이런 감독체제를 구현한 영국 및 호주의 체제가 많은 참고가 될 것이다.

특히 정부조직과 관련된 법 논리로 금감위와 금감원을 나눈 것은 매우 비생산적인 구별방법이다. 단일 금융감독기관이 유기적인 통합체제로 이뤄져 금융규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효율적이고 책임있는 조직이 되도록 하는 게 정부조직 논리보다 더 중요하다.

또 법률은 금융감독기관이 위험별 규제의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규제수단을 규정하고, 규제와 관련된 감독기관의 책임에 관한 사항을 선언해야 감독기관의 효율과 책임이 담보될 수 있다.

통합감독기관이 현실적으로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유관기관과의 협조체제도 중요하다. 특히 법률 제.개정기관인 재정경제부,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와 밀접한 협조체제를 갖춰야 한다. 감독기관을 통합하더라도 지금처럼 금감위의 우수한 공무원 인력을 감독정책 담당자로 활용하고, 공정위 업무에 친숙한 공무원을 채용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함께 금융감독기관은 감독대상인 금융기관 혹은 거래소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상호 밀접한 협조체제를 유지해야 한다. 감독기관의 태도가 경직되어 있으면 금융시장은 혁신에 소극적이게 된다.

마지막으로 책임있는 통합감독기관을 만들기 위해선 감독기관의 내부 지배구조를 효율적으로 만들거나, 감독기관의 규제행위에 대한 이의 절차를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일심 특별법원으로 금융법원을 설치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중기 한림대학교 법학부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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