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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육체의 양심|김자림 <극작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가져가라, 나의 눈과 나의 심장과 나의 두콩팥과 나의 폐를.
자기의 모든 신체기관을 제공하고 죽은「넬바·헤르난데스」부인의 기사를 읽고 나는 순간 쩌릿한전율마저 느꼈다.
이것이 산 인류애이다. 신「휴머니즘」이다.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최대의 축복들을 기꺼이 선사한 엄청난 자선사업.
인간의 숨겨진 위대한 신통력을 새삼 보는것 같아 외경의 정을 금치못했다. 올해 20세의 젊은나이로 머리에 총탄을 맞고 절명한 미국의 가정주부인「넬바·헤르난데스」. 인간은 죽으면서도 자기의 육체를 파괴하고 싶지 않는것이다. 온전한 몸뚱이 채 갖고 가고 싶은 사자의 마지막 욕심, 아니 그것은 사자의 당연한 권리이며 생자와의 엄격한 묵계인 것이다.
더우기 우리는 예로부터 시체를 잘못다루면 자손이 재난을 당한다고 구전돼왔다. 그런 두려움으로 간주된다면 시체를 건드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자기 시체를 태워 강에다 그재를 뿌려달라는 유언은 더러 듣지만, 타인을 위해 몸을 내놓았다는 미담은 들어 본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는 인류애에 메말라 있는것일까? 「슈바이쩌」정신이 이 땅에는 없는것일까?
자기생명의 「에너지」가 완전히 소진되었을때, 아직 함께 죽일수 없는 산기관을 떼내어 남에게 이식한다는 것은 어찌 생각하면 자기의 생명의 파편일망정 몇백분지 아니 몇 천분지 일로 살리는 길도 되는것이다. 남의 육체속에 자기생명의 조각이 서식해있다는것은 오늘날 현대의학이 주는 익살이라고도 할수있다. 어쨌든 육체의 유대의 가능성은 인간의 존엄성을 부르짖고 있는 오늘 그것은 현대의학의 개가이기전에 「휴머니즘」의 개가이기도하다.
폐를, 콩팥을, 심장을 때어주고 그리고 보석알처럼 아껴오던 눈알마저 빼어주었다는것은 완전히 자기를 초극한 산 신화이며 버리고 가는 육체의 마지막 양심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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