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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 병 치료 외에는 고기 삼가고 출가 20년 미만은 소형차 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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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질병과 요양 등의 이유가 아니면 육식을 삼간다’ ‘아파트나 단독주택 형태의 토굴을 소유하거나 거주하지 않는다’ ‘출가한 지 10년 이상 20년 미만의 승려는 배기량 1500cc 이하의 소형 승용차를 이용하자’….

 앞으로 조계종 승려들은 고기를 먹거나 아파트에 거주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 승용차도 출가 연한에 따라 차량 배기량에 차이를 둬 소유해야 한다. 새로 만들어지는 ‘승가청규(僧伽淸規)’에 구체적인 관련 규정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승가청규는 수행자가 지켜야 할 계율(戒律), 일종의 실천지침이다.

 조계종 종단쇄신위원회(위원장 밀운 스님)는 4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승가청규 제정안을 의결했다. 제정안은 총무원으로 넘겨져 종무회의 의결, 종정(宗正) 교시(敎示·가르침) 등을 거쳐 이달 말께 확정·발표된다. 지금까지 선방에서 참선하는 수좌(首座)들이나 특정 사찰 소속 승려에게만 적용되는 부분적인 청규는 있었다. 하지만 조계종 승려 전체를 대상으로 한 ‘보편적 청규’ 제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쇄신위의 청규 제정은 지난해 5월 일부 승려들의 도박 동영상 파문에 따른 후속 조치다. 종단 차원에서 사회에 부끄럽지 않은 승려들의 행동 규범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승용차의 경우 출가 20년 이상 25년 미만은 배기량 2000cc 이하 , 25년 이상은 3000cc 이하를 소유토록 했다. 여비는 주지도 받지도 말아야 하며 특정 정당 지지 발언도 삼가야 한다.

 문제는 승가청규가 강제력이 없다는 점이다. 쇄신위의 제정안은 의식주 및 소비 분야에 걸쳐 3~7개씩의 실천 항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권고사항 아니면 삼갈 사항으로 돼 있다. 제재 조항도 없다. 이 때문에 어길 경우 처벌이 없는 규칙을 누가 지키겠느냐는 문제 제기가 청규 제정 과정에서 있었다는 후문이다.

 쇄신위는 그런 점을 의식한 듯 “도박, 유흥주점 출입 음주 등과 같은 막행막식 행위에 대해선 종법(宗法) 등을 통해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별도로 만들기로 했다. 도박이나 정도가 심한 음주 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 조항을 만들어 처벌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현행 승려법은 음주난동, 상습도박 등은 5년 이상 사찰 주지에 임명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중징계하지만 단순도박, 유흥주점 출입에 대한 별도의 제재 규정은 없다. 다만 단순음주는 새 청규에 관련 조항이 없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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