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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중앙전화국장|초대 민태식씨 21대 윤병화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통신확보위원회위원장이던 길현봉씨가 좀 보자고해서 갔더니 「민형, 중앙전화국 좀 맡아주소」하지 않겠어요. 그러자고 했더니 당장 국장이 됩디다.』
서울에 단 하나 밖에 없던 자동전화 중앙전화국의 초대국장 민태식씨(70)는 21대 후배, 윤병화국장(46)을 만나자 국장 발령이 어처구니없는 벼락 감투였다면서 환히 웃었다.
『수고많으셨겠읍니다.』 윤국장이 인사를 했다.
『벼락 감투를 쓰고보니 큰일 났더군요. 일본인들이 전화선 매설도를 태워 「케이블」배선을 알 수 없는데다가 전화를 적산이라고 이웃사람들이 제멋대로 뜯어다 쓰는 것이 상당히 많았지요. 요금도 받지못한게 퍽많았지.』
당시 본국전화는 5천5백대이고 용산·광화문·동대문국에 공전식전화가 8천대로 모두 1만3천대였다고 민씨는 되돌아본다.
윤국장이 ②국이던 것이 지금은 (22) (23) (24) (25) (28) 5개 국번으로 늘었고 시설은 2만8천18대라고 「브리핑」하자, 민씨는 『허-』하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커졌구만. 내가 있을 때는 일본기술자들이 막 물러간 참이라 제일 모자라는 것이 사람이었어요. 고장이나도 제대로 고칠 수 없었고 기계를 닦을 기름조차 없어 물걸레로 쓱쓱 닦아냈거던. 그러니 자꾸 고장이 날 수밖에. 기술자는 많이 확보하고 있나요?』
민씨는 혼이 난 경험이 잊혀지지 않는지 후배를 걱정했다. 『지금은 사정이 좋아졌읍니다. 하지만 사람은 역시 부족합니다. 연초에도 일류기술자6, 7명이 집단사표를 냈읍니다. 대우 좋은 월남이나 개인회사로 떠나갑니다. 역시 기술자 확보가 문제로 되고있죠.』 윤국장의 설명을 듣자 민씨는 놀란다.
『그래요. 대우가 나빠 다른 곳으로 갑니까? 그땐 사람이 없었긴해도 내 나라를 건국한다는 기개로, 정말 공무원들의 기개가 높았어요. 한2, 3년이면 우리 나라도 잘살게된다, 해보자. 그래서 일 하는데만 정열을 쏟았어요. 그래, 요즘 전화 달기가 힘들다는 소문인데 정말 어려운가요?』
민씨도 당시엔 광복군출신장교라는 분들의 호통에 시달렸다고 웃음. 『미안합니다. 지금도 풀리지않고 있읍니다. 지금 서울시내 9개국 20개 국번에 15만4천대가 있으나 공급율은 약70%입니다. 수요와 공급이 맞아 떨어지지 않고 있어요. 당분간은 전화가 달리겠어요.』 화제가 통화료계산에 미치자 민씨는 옛날 얘기를 들려주었다.
20년전 옛날 용산공전식 전화는 교환양이 통화를 연결해주고 통화수를 연필로 기입하는 방식으로 도수요금을 매겼어도 별로 큰 잘못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선배는 『일은 사람이한다』고 힘주는 것이었다.
초대선배는 체신부가 당초 갖고있던 통신이원양성소·체신학교등을 성급히 없애고 그 대안을 내놓지 않은게 잘못이라고 따끔히 일침을 가하고 지금도 충무로1가엔 60년전에 가설한 전화선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있다면서 이게 될 말이냐고 나무랐다.
『워낙 낡은 부분이 많아서 전부 갈지 못했읍니다만 올해들어 7천회선을 갈았고 내년까지 1만회선을 더 갈면 관내「케이블」은 전부 좋아집니다. 하지만 또 문제는 있읍니다. 지금 22국 기계는 시설한지 35년이 된 것이예요. 외국서는 10년을 수명으로 보는데 25년이나 더 사용했으니 고장이 많아요. 그래도 이 낡은 기계가 제대로 움직이는 것은 직원들이 성심껏 기계를 아끼는데 있어요.』
민씨는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통신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모두 한가족 같은 친근한 생각이 들어요. 선배라고 해놓은 게 없지만 잘키워주시오.』
민씨는 윤국장의 손을 굳게 잡으면서 장관도18대 20대 안팎인데 1개 전화국장이 정부수립20년에 21대나 바뀐 것은 너무 잦은 인사였다고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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