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괴의 정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괴」자의 풀이는 정말 괴상하다. 이 글자의 획(획)을 뜯어보면 마음「심」또「우」흙「토」의합자이다. 한자의 기원에선 마음으로 밭을 간다(경)는 뜻으로 되어있다.
밭은 호미나 괭이로 가는 것이 정도이다. 귀신이 아니고는 마음만으로 밭을 경작할수는 없는일이다.
뒤집어 생각하면, 마음 쓰는대로 모든일이 된다는 뜻이나 아닐까. 팥심은데도 콩나라면 콩이나고, 또 백합뿌리를 심은곳에서 독초가 나라면 나는 식으로-.
옥편에서 「괴」자란을 보면 좋은 단어는 한마디도 없다. 기이하고, 의심스럽고, 괴물같고, 깜짝놀랄만하고… 온통 이런 쓸모로쓰인다. 「괴귀」쯤에 이르면 암흑속에서 도깨비를 만나는 기분마저 든다. 괴담·괴물·괴몽·괴병·괴한… 점점 으스스한 느낌만 깊어진다.
요즘 신문을 보면 바로 그 「괴」자가 횡행한다. 괴벽보·괴편지가 발걸음 소리도 없이 다닌다. 대로상에 괴벽보가 활개를 치고, 신문사 편집국장들댁엔 괴편지가 바람같이 날아온다.
「괴」자가 붙는데 내용이 흐뭇할리 없다. 무슨 속인지 알둣 모를듯 도깨비 같다. 삼복피서를위해서나 처방된 누구의 「유머」라면 우스개로 치부할수있을 것이다.
이사회는 괴편지라도 수신인에게 전달할 의무는 지고있다. 그러나 그런 편지를 쓸 권리까지 보장해주고 있지는 않다. 바꾸어 말하면, 괴편지를 받지않을 권리까지도 보장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정정당당하지않은 방법으로 괴상한 분위기를 조작하려는것은 철두철미 악덕이며, 위법이다.
당국은 단숨에 두팔을 걷고 나서야 한다. 「괴」자의 그림자도 잡지못하고있는 현실은 답답하다. 「괴」라고 반드시 정체가 없는것은 아니다. 엄연히 「벽보」나「편지」엔 필치가 남아있다. 지문도 물론 있다. 벌써 두가지 단서는 잡은 셈이다. 이쯤되면 수사는 깊숙이 진전되어 있어야 순서이다. 이런일들이 한낱 정치의 무대에까지 번져 입씨름으로시종되고있는것도 우습다.
「매스콤」시대에 우리사회는 아직도 상형문자시대와 같이 알듯모를듯한 괴상한 내용으로 의사를 소통하려는 그 의도는 새삼 격세지감에 빠지게 한다. 그만큼 우리의 민주질서는 상형문자기에 뒤떨어져있다는 뜻이나 아닐까. 얼굴이 붉어진다. 삼복도 가셨는데 괴의정체도 밝혀져야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