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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고무신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선생님 어떡합니까? 저희애 하나만 좀 편리를 봐 주십시오, 네?』엊그제만 하더라도 얼굴에 노랑꽃이핀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우리애 하나만이라도 하며 애걸(?)하던 학부형들이다. 높으신 어르신네 말한마디에사정은 돌변했다.
○…자정도 없는 과외공부에 어쩌다 새록잠이라도 들면 어머니들의극성스런 찬물수건이 아이들의 이마 위에날벼락을 친다. 소스라쳐 깬 아이들은 비몽사몽간에 외던 줄을 되뇌인다.
그러던 그들에게 이게 무슨광명의 소리였던가. 공부시간이 훨씬지나 몰려온 노란얼굴들이 『이젠 과외공부안해도 된대요. 장관님이 오늘말했어요. 「라디오」에서 들었어요. 나도 「텔리비젼」에서 똑똑히 들었어요.』
○…그들 노란 얼굴들은 얄팍한 편지봉투들을 하나씩 팽개치듯 놓고 바람소리를 내며 사라진다. 개중엔 그래도 측은해 보였던지 마치 쫓기는 병사처럼 뒤를 힐끔 힐끔 쳐다보곤 달아났다.
난 닭쫓던 개가 되어 멍하니 쳐다만 보고 있었다. 이제 노랑꽃 얼굴들은 결코 보이지 않겠지, 그리고 어머니들의 치맛자락도…. 다만 그렇게 소중하던 과외공부선생이 헌 고무신짝으로 남았을 뿐이다.

<김인종·25·학생·서울 용산구 효창동6의1·오세관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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