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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금고가 비었습디다-DJ 정권 5년의 경제실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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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가 비었습디다-DJ 정권 5년의 경제실록/김수길.이정재.정경민.이상렬 지음, 중앙 M&B, 1만5천원

지난해 중앙일보에 장기 연재됐던 특별기획 '미완의 개혁-국민의 정부 경제실록'이 확대 보완된 단행본으로 나온다는 소식에 나는 두 번이나 서점을 찾았다.

그만큼 기다렸던 책이다.50여년의 한국 현대경제사(史)에서 최대의 격동기였던 지난 5년의 경제사(事)가 이 책에는 고스란히 복원돼있다.

우리의 기록 문화가 아직 척박하고 언론의 심층 취재가 부족한 현실에서 이 책은 큰 이정표를 세웠다.

또 '미완의 개혁'을 완수해야 할 신정부의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전문가들이 생생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실록(實錄)이다.

이 책은 지난 5년간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한 4부작으로 구성되어있다.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외채협상에 전력투구했던 외환위기 초기,은행퇴출과 재벌 간 빅딜 및 대우몰락이 전개됐던 기간,IMF(국제통화기금) 졸업을 선언하고 새로운 대북관계를 모색하면서 현대가 좌절하는 기간,그리고 은행합병과 의약분업등으로 사회가 어수선했던 네 기간을 다루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했던 관련자들의 진솔한 증언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서,증언이 서로 엇갈리고 자료로도 확인이 어려운 내용들은 제외함으로써 정확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이 확인된다.

아울러 2백여개나 되는 상세한 각주는 비전문가의 이해와 전문가의 흥미를 동시에 끈다. 이 책의 사실기록으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대략 다음의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대내 문제보다는 대외 문제의 해결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는 것이다. 국가부도 위기의 초기 상황에서 정치, 관료, 재계의 지도자들도 사심을 버리고 금 모으기 운동에 참여하는 국민과 함께 단결했기 때문에 대외적인 신뢰회복 성공의 관건인 외채협상도 기대 이상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에 대내 문제를 해결하는 경제개혁의 과정은 이해의 상충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낙후성으로 인해서 낙관에 봉착했다는 점이 새삼 확인된다.

둘째, 경제개혁의 핵심은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하는 것인데, 도덕적 해이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차단하려면 전략적 사고와 일관성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부실기업 퇴출을 통한 기업구조조정이 부진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정책자들의 전략적 사고의 부재라는 것을 이 책의 기록들을 통해 알 수 있다.

부실기업 판정의 주체는 은행이다. 그런데 그런 은행일수록 부실 때문에 동반 퇴출되므로 은행은 부실기업을 감추고 오히려 연명시키려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은행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고 부실기업의 퇴출정책을 수립하는 전략이 부족했다.

건보통합으로 의료재정이 파탄 나게 된 일차적인 원인도 통합이 초래하는 지역의료보험과 직장의료보험 각 조직의 도덕적 해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비전략적으로 추진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한편, 관치금융의 논란이 있었지만 은행을 이용하여 재벌개혁을 추진한다는 원칙과 부실은행의 정리과정에서 이해당사자가 손실을 분담한다는 원칙을 일관성 있게 유지했으므로 초기의 재벌개혁과 은행구조조정은 대체로 성공했다.

그러나 투신의 구조조정에서는 손실분담원칙이 훼손되었으며, '성역 없는 재벌개혁'을 표방하면서도 대북사업을 주도하는 현대그룹에는 뒤에서 특혜를 주는 '이중 플레이'를 함으로써 일관성이 손상되었다. 그 결과 공적자금의 투입도 크게 증가했다.

셋째, 대통령의 제왕적 권위는 가공할만한 폐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국민의 정부가 추진한 '피곤한 개혁'의 대표적인 사례는 의약분업이다.

1998년 9월 어느 날, 대통령이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김 장관, 의사들도 싫다, 약사들도 싫다, 거기다 국민들도 불편해진다는데 그걸 왜 하려고 하시오"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장관이 의약분업의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하자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김 장관, 그냥 물어본 거요. 해보시오"라고 했다.

뚜렷한 의지 없이 시작된 의약분업이 어느새 '대통령님의 뜻'을 업고 강행되다가 의료대란으로 막을 내렸다는 사실에 그저 경악을 금할 수 없음이 이 책에서 확인된 것이다.

넷째는 시민단체의 바람직한 역할이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교훈이 중요하다. 90년대 들어와 시민운동은 한국의 민주화에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의약분업이나 의보통합과 같이 산업정책적인 접근이 중요한 의료정책분야에서 경제의 비전문가인 시민운동가들이 목소리를 크게 내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행정기능까지 수행하는 비정상적인 모습을 연출하였다.

이 책은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감스럽게도 'DJ 정권 5년의 경제실록'으로서는 미완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이 책이 기록하고 있는 사건들은 그 동안 신문에서 일면 톱기사로 자주 다루어졌던 사건들 중심이다.

그러나 사건들의 뒤에서 일어났던 사실들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예컨대, 청와대와 경제 각 부처의 역할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경제개혁에 관하여 국회와 사법부의 역할과, 그 역할이 미미한 원인에 대한 추적이 미흡하다.

여소야대가 가능한 대통령제에서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행정, 입법, 사법의 삼권분립체제가 보다 합리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박상용 교수<연세대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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