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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카페] '붉은 포대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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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포대기/공선옥 지음, 삼신각, 9천원

1991년 '창작과비평'을 통해 등단한 공선옥(40.사진)씨의 네번째 장편소설. 지금 아이들은 유모차에서 자라지만 일이십년 전만 해도 포대기에 둘러업혀 어머니.누나.할머니 등에서 포근하게 자랐다.

'붉은 포대기'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다시 핵가족에서 이혼으로 붕괴돼 가고 있는 가족 세태를 여실히 그리면서도 포대기같이 포근하고 끈끈한 가족의 속내를 토속감넘치게 다루고 있다.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살' '수수밭으로 오세요' 등 전작 장편소설을 통해 공씨는 여권(女權)신장 등 여성주의에 확실히 눈떠있는 작가임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그는 끈질긴 모성애로 모나든 둥글든 모든 것을 감싸안는 보자기,포대기 같은 전통 한국 여성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드문 여성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공씨는 서른다섯살의 미혼녀 인혜를 주인공으로 하여 부모.형제 사이의 갈등, 부부 사이의 갈등과 파경.재결합 등을 다룬다.

사랑에 상처입고 미술학원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인혜. 그녀는 자신을 배신한 남자가 오라 하는 파리 유학 비행기를 탈까,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고향 기차를 탈까 망설이다 기차를 탄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국제 자유인 대신 작은 시골마을 핏줄에의 얽매임을 택한 것.

고향에 내려가 암에 걸린 어머니, 치매에 걸린 할머니, 그리고 서른살이 넘은 정신지체아 여동생을 돌본다. 젊은 교사 시절 상처(喪妻)와 애인의 죽음이란 서로의 아픔를 달래며 만난 부모,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아버지는 남들 앞에서 어머니에게 냉담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의사인 큰오빠,고향에서 부모 괴롭히며 망나니로 살아가는 작은 오빠 부부를 통해 지금 30,40대 부부의 애정관과 가족관을 그려나간다.

어떻게 보면 부모,형제.자매가 모두 뿔뿔이 헤어지고 다투는 결손 가정인 한 대가족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다루면서도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끈끈한 가족애가 흐르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젊은 여성작가로서는 드물게 핵가족 그너머 대가족 문제를 다루며 합리 이전의 인간의 원초적 사랑과 생명을 파고든 작품으로 읽힌다.

도농(都農)간,세대간의 차이를 아우르며 작가가 이렇게 대가족 문제를 구수하고 속도감 있는 이야기로 다룰 수 있는 것은 작가의 원(元)체험과 배다른 자식을 겉으론 미워하더라도 생명으로서 키워내고야마는 전통적 여성성의 신념에서 비롯된다.

가족들 제각각의 이야기 모두를 단행본 장편에 담아내려는 욕심에 산만한 측면도 있지만 도농간을 온몸으로 살아낸 작가만이 써낼 수 있는,이기적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과 사랑의 깊은 의미를 읽을 수 있어 듬직하다.

이경철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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