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줍은 한국, 월드컵 열기 모른 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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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개막이 임박한 서울은 월드컵 열기에 무관심한 듯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월드컵 본선 개막을 목전에 둔 지금에도 한국인들은 최대의 축구 대회의 열기에 휩쓸리지 않고 있다.

거의 모든 주요 건물과 기둥이 각종 축구 관련 장식으로 도배된 것을 보면 강한 축구 바람이 서울을 휩쓴 것 같다. 그러나 시민들은 거의 동요하지 않는 듯하다.

"세계의 서울 방문을 환영합니다" 등의 문구만 없다면 월드컵이 다른 곳에서 열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월드컵 관계자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전 경기의 입장권이 매진됐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한국은 일본과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다.

그러나 아직도 대부분의 경기 입장권은 여전히 구입 가능하다.

이런 현상이 무심한 분위기와 합쳐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월드컵 열기가 너무 낮다고 걱정하게 됐다.

그러나 서울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 대사관에 근무하는 손수경(24)씨는 "아주 흥분된다"라며 "월드컵은 큰 축제"라고 말했다.

축제 분위기?

서울 도심에 내걸린 이런 현수막들 만이 월드컵 개최를 알려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정서는 솔직히 표현되지 않는다.

서울 도심을 걸으면 축제 분위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국기를 몸에 두르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과거 월드컵 대회들과는 사뭇 다르다.

프랑스 학생 올리베르 라로끄는 "여기서 약간은 더 파티처럼 즐거운 분위기를 기대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열정을 발견하려면 한국에 단련된 시각이 필요할 것 같다.

한국에서 미군 헌병으로 3년을 근무한 에릭 챔버스는 "확실히 열기가 뜨겁다"라고 말했다.

"다만 한국인들은 약간 절제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적으로 보면 이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인들은 일본보다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리고 아직은 전통적으로 엄하게 통제된 사회의 관념에서 벗어나는 과정에 있다.

국민적 자부심

한국인들의 자국팀 응원은 국가적 자부심을 증대시키고 있다.
챔버스는 지난 일요일의 가시적인 징후를 지적한다.

한국팀이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치른 마지막 친선전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선전하다 2-3으로 패했을 때 수많은 한국인들은 하던 일을 멈췄다.

한국의 전통적인 축구 색깔인 붉은색의 바다가 전국 도시의 거리들을 채웠다. 수천 명의 군중은 도로와 주요 거리를 막고 대형 텔레비전 화면 앞에 서서 고국의 영웅들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수경씨는 "이번 월드컵은 한국을 응원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나는 한국인들이 국가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스포츠 까페와 술집들도 사람들로 가득 메워진다.

아일랜드 술집 오킴스의 매니저 애슐리 치즈먼은 "한국 경기 시간은 이미 완전히 예약이 끝났다. 대부분의 아일랜드와 독일 경기 시간대에도 예약이 꽉찼다"고 말했다.

금요일에 열리는 전년도 월드컵 우승국 프랑스와 세네갈의 개막전이 가까워 오면서 사전에 계획된 수많은 행사들과 해외 관광객들의 물결이 현지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 세계의 이목이 동아시아로 쏠리면서 한국의 축구 사랑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Andrew Demaria (CNN) / 이인규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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