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죽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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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세상은 자꾸만 삭막해만 간다.
얼마전에 조지훈이 가고,「허버트·리드」가 가고, 이제 또 김수영마저 죽었다. 시인들이 죽어간다고 세상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인들이 숨쉬기 어려운 풍토이기 때문에 시인들이 자꾸만 죽어가는 것만같은 서글픔이 앞선다.
김수영이 죽던 날 그가 값싼술을 마셨고, 차에 치여 죽었다는 것도 뭣인가 오늘을 사는 시인의 운명을 말해주는것같이만 여겨진다.
그는「허버트·리드」만큼 위대한 시인은 아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진실에의 복종을위한 앙칼진 용기에 지탱되어, 부조리한 숙명에의 반역을 항상 기도하였다는 점은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서도 그는『문화의 본질이 꿈을 추구하는 것이고, 불가능을 추구하는것』이라고말했다.
오늘의 풍토는 어찌 보면 시인이 숨쉴곳은 못된다. 이런 곳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 것은 시인이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시를 잃지 않을 수 있으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있는 질서』라는것도 그의 마지막 말의 하나였다.
그래도 그는 끝내 시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절망은 하지만 비관하지는 않는다』(앙드레·말로)는 강인한 시정신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의 병폐를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기에 현대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둘러싼 사회를 진지하게 노래해나갔다.
그것은 바로 인문에의 희망이며, 보다 진실한 것에 대응하려는 알찬 내면의 형식이었다. 그러기에 한 시인의 죽음은 다시없이 애처롭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또 그가 거성이 아니기에 더욱 우리에게 인간적인 감동을 자아 내주고있는것이기도하다.
시인이 자꾸만가고…. 사랑과웃음을잃은 우리의 생활은 더욱 황량해지는것만같다. 착한사람은 일찍 죽나보다. 앙상하게 메마른 얼굴에 어린이처럼 순하고 큰 두 눈만이 번쩍이던 김시인도 이제는 갔다. 그러나 그의 꿈은, 그리고 또 그의 인간에의 다시없는 신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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