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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춤' 괴짜 세계여행가, 다시 숭례문서 덩실덩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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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새단장한 숭례문 앞에서 경복궁 수문장 요원, 미국 대학생들과 춤을 추는 맷 하딩(앞줄 가운데). 2005년부터 100여개 나라 명소를 다닌 그는 호주 그레이트배리어리프(대산호초)에선 수중에서, 북한 평양의 광장에선 한복 입은 주민과 춤을 췄다. [사진 한국관광공사]
하딩

미국인 맷 하딩(36). 전 세계 100개가 넘는 나라를 여행하며 제작한 ‘춤추는 동영상’의 주인공이다. 그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기념 사진 대신에 우스꽝스런 춤 영상을 찍는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명소 앞에 서서 현지인과 어울려 막춤을 춘다. 2003년 세계 여행을 시작하며 동영상을 찍었고, 2005년 동영상을 처음 유튜브에 올렸다. 이름 하여 ‘도대체 맷은 어디에 있을까?(Where the Hell is Matt?)’. 5분도 안 되는 분량의 이 동영상 시리즈는 지금까지 8000만 건 넘는 조회수를 올려 유튜브 관광부문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25일 맷 하딩이 서울 숭례문 앞에서 예의 그 막춤을 췄다. 그는 미국에서 함께 온 대학생 17명, 경복궁 수문장 교대 의식 요원 5명과 함께 싸이의 ‘강남스타일’, 그리고 자신이 개발한 막춤을 섞어 한바탕 춤판을 벌였다. 현재 미국여행업협회(USTOA) 지원을 받아 세계 10개 도시의 명소를 돌며 동영상을 촬영 중인데, 숭례문도 그 중 하나였다. 숭례문 홍보 영상은 오는 7월께 전 세계에 공개된다. 막춤 촬영 직전 그를 만났다.

 - 숭례문을 찾은 적이 있지 않나.

 “2008년 1월 숭례문 앞에서 동영상을 촬영했다. 화재가 나기 2주일 전이었다. 인터넷을 통해 화재 소식을 들었다. 정말 안타까웠다. 숭례문 앞에서 다시 촬영할 수 있어 행복하다. 새롭게 단장한 숭례문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싶다.”

 - 2008년엔 판문점에서 차렷 자세로 서 있는 헌병 옆에서도 막춤을 췄다. 어떤 기분이었나.

 “이번이 네 번째 방한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한국은 세련돼 있고 쇼핑하기에 좋은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판문점은 달랐다. 늘 하던 대로 익살스런 춤을 췄지만, 왠지 슬프고 만감이 교차했다. 세계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정이 일었다.”

 - 춤추는 동영상을 만들게 된 계기는.

 “비디오게임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3년 회사를 관두고 친구와 세계여행을 떠났다. 기념사진보다 춤추는 영상을 남기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한 일이 오늘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제 이 일은 내 전부가 됐다. 처음에는 영상이 인기를 끌게 될 줄 상상도 못했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인류가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내 영상에서 그런 호기심을 채우는 것 같다.”

 - 춤이 인상적이다.

 “낯선 땅에서 현지인의 경계를 푸는 데 춤만큼 좋은 게 없다. 같이 막춤을 추다 보면 자연스레 그들과 하나가 된다. 춤은 가장 간단히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표현 수단이다.”

 - 영상의 배경이 관광 명소에서 점차 분쟁지역이나 오지 같은 곳으로 옮겨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 안의 의미까지 고려한다. 가장 큰 메시지는 두려움(fear)깨기이다. 뉴스에서 사건·사고를 주로 다루다 보니 사람들이 다른 문화에 막연히 두려움부터 느낀다. 전 세계 를 경험하며 내가 목격한 건 친절한 사람과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영상을 통해 나는 그런 두려움을 깨고 싶다.”

 맷 하딩은 “세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 외국어 실력도 모자란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사실 춤이나 촬영기술도 전문가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전 세계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그는 “멋진 춤을 추고 고가의 장비를 꾸려 고급 영상을 만드는 것보다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지금은 TV 광고에도 출연하고, 정부·기업의 지원도 받 지만 그의 여행법이 십 년째 그대로인 까닭이다. 지난 24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날아와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은 하딩은 25일 저녁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인도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백종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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