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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오 체제의 진일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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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민당은 3일 새 당헌에 의한 당 요직 인선을 매듭지음으로써 전당대회를 치른지 12일만에 당기구를 정상화했다. 전당 대회에서 강력한 단일 지도 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한 유진오 총재는 오랜 진통 끝에 『대중과 함께 호흡하는 국민정당』으로서「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유진오 체제의 새로운 진용」을 짠것이다.
그동안 당내각파의 치열한 경합 때문에 지명이 보류되어 왔던 국회부의장에는 야당 대표로 여·야 합의의정서 작성에 나섰던 윤제술씨가 지명되었으며 이른바 「당3역」으로 꼽히는 사무총장에는 고흥문씨 원내총무에는 김대중씨, 그리고 정책심의회의장에는 정헌주씨가 각각 지명되었다.
당연직정무위원인 재정위원장에 정운갑씨, 인권옹호위원장에 박병배씨, 중앙정치훈련원장에 김형일씨, 그리고 중앙상무위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무임소정무위원에 정성태·정해영·김영삼·김재광·장준하씨 등 5명을 지명했다.

<새 필동 세력 구축>
당총재에 추대된 후 첫 기자 회견에서 『요직 인선은 어느 파벌에 치우치지 않고 젊고 유능한 인사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겠다』고 밝혔던 전 총재는 이번 인선 과정에서 약간의 타의가 작용한 흔적이 엿보이기는 하나 대체로 그의 구상대로 진용을 가다듬었다. 당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각 파별로 요직을 안배하지 않고 잡다한 계보의 중간 실력자급을 모두 기용함으로써 유 총재는 당을 영도해 나가는데 있어서 스스로 전면에 나설 수 있는 단제를 마련했다.
이것은 또 당내 8개사단의 사단장격인 각파 보스들을 제쳐놓고 여단장격인 중간 실력자급들에게『당무에 참여하는 길』을 열어 놓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필동지지 세력을 구축, 71년 대통령 선거까지 잡음 없이 당을 이끌어가려는 유 총재의 장기적인 포석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번 인선의 또 하나의 특색은 한때 특정 계보의 보스로 활약했던 조영백·홍익표·서범석·박기출씨 등 원로급 인사들과 재야 인사로 신민당 창당에 참여한 김홍일·장기영씨 등을 당무에 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지도위원으로 돌려 부분적이나마 세대 교체를 시도 한점을 들 수 있다.

<주류측이 압도적>
당무를 사실상 주도하는 18명의 정무위원(중앙상무위원장도 곧 선출 예정)을 파별로 분류해보면 형식상 주류가 10명(유진오·유진산·김의택·고흥문·김대중·김형일·정성태·정해영·김영삼·장준하)범비주류가 6명(이재형·정일형·윤제술·정헌주·정운갑·김재광)중도에 박병배씨 1명으로 되어 있으나 비주류중 정일형·윤제술·정운갑씨 등은 유 총재와 퍽 가까운 처지로 엄밀하게 따지면 그 비율은 주류가 압도적이다.
유 총재는 앞으로 원외당무는 고흥문 사무총장에게 원내대책은 김대중 총무에게 각각 맡겨 두 주역을 중심으로 당무를 책임지고 운영해 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요직 인선 과정에는 당내 주류·비주류의 「이해」가 엇갈려 숱한 진통을 거듭했다. 유 총재는 우선 『요직 인선에는 부총재의 의견을 들어』라는 당헌 규정의 해석을 싸고 이재형 부총재와 논란을 벌였으며 국회부의장과 원내총무 자리를 놓고 주류·비주류는 물론 주류인사들 자체 내에서도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통에 내정자를 몇차례 뒤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원내총무에 김영삼·김대중씨가 서로 양보할 기세를 보이지 않자 의원총회에서의 「인준」과정을 우려, 한때 정성태씨를 내정하고 정책심의회의장에 김대중씨, 재정위원장에 김영삼씨로 했으나 정씨가 이를 거절함으로써 백지화하고 최종 순간에 김대중씨가 원내총무로 지명되었다.
3일 아침까지도 박영록씨로 내정되었던 정책심의회의장 자리는 인선을 발포하기 직전에 이재형씨의 강력한 요청으로 비주류며 원외인사인 정헌주씨로 뒤바뀌었으며 국회부의장에 끝까지 경합하던 윤제술·정해영씨의 경우 윤씨가 유진산·이재형 두 부총재의 지지를 얻어 확정되었다.

<요직 탈락자 반발>
앞으로 유진오 체제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기까지에는 『당요직중 45%의 안배』를 주장했다가 실패로 돌아간 비주류와 주류중 요직에서 탈락된 사람들의 반발 때문에 적지 않은 시련이 예상된다. 비주류의 보스격인 이재형 부총재는 이미 인선 결과에 대해 공식적인 불만을 표시했으며 주류중 정해영·김영삼씨 등도 내면적으로 불만을 가질 것은 틀림없을 것 같다.
이러한 당내 일부의 반발은 의원총회의 「인준」(재적 과반수)을 거치기로 되어 있는 원내 총무와 중앙상무위의 인준을 받아야 하는 5명의 무임소 정무위원이 첫 표적이 되고 있는데 이것은 유 총재의 영도력을 저울질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번 요직 인선은 유 총재가 「이상 7에다 현실 3」을 가미한 결과라고 평가되고 있으며 당내 중간 실력자의 대량 기용과 김형일·장준하씨 등 필동 직계의 우대(?)로 중앙당무위에서의 5명의 무임소 정무위원과 의원 총회에서의 원내 총무에 대한 「인준」 과정에서 다소의 잡음은 예상되나 무난히 첫 시련을 극복하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이태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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