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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월여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하늘에도 밝은 달이 있는데, 이땅에 또 하나의 달이 있으니…. 』 김활란여사의 자숙전 『그 빛속의 작은생명』 에 나오는 구절이다. 「또하나의 달」이란 다름아닌 김활란여사 자신의 아호인 「우월」을 두고 하는 얘기다.
우월에겐 호말고 별명이 하나있다. 「무정천재」 라는시적인별명이다. 친구들은 한창시절에 그렇게도부른모양이다. 우월의말을 빌리면 그러나 시적인 「무드」만은 아니다. 「무정한천재」 라는뜻과는거리가 먼 『무정하기로는천재적인 소질』을가졌다는 뜻-.
「무정천재」의 「에피소드」가하나있다. 그의 자숙전에도 나오는이야기다. 우월이 미국에 유학했을 시절에 그는 용무로 「뉴요크」에서 「워싱턴」으로 기차여행을떠나는데 역두에 느닷없이 설산 (장덕수선생)이 배웅을 나왔더라는 것이다. 결국 설산은 우월과같은 기차를 타고 만다.
『웬일이세요, 선생님?』 우월은놀란 표정을 하고 물었다. 『가시는 곳까지 바라다 드리고 싶습니다. 』 설산은 별로 멋적어 하지도 않더란다. 『제가 어린애던가요?』이렇게 말하는 우월의표정은 짐작이 간다. 『어린아이가아니니까 바라다 드리구 싶은겁니다.』
그러나 차중대화는 중도에서 끊어지고, 설산은 중문의「볼티모어」역에서 내리게 되고 말았다. 그후 김활난여사가 귀국하고 나서도 설산은 불꽃이 튀는 구애의편지를 수없이 보내 왔다고 한다. 우월은 언젠가 그런 말을 한적이 있있다. 『오죽해서 설산은「빙산」이라고, 그래서 감정이라고는 모르는 「빙괴」라고…』 했겠느냐고-. 아직도 우월에겐 별명이하나더남아있다. 『국민의 장모』-.요즘의 젊은세대들이 지어 부르는 별명이다.하긴 우월도 이화출신의 남편들을 스스로 「사위」라고 부른다. 그의 슬하에서 졸업한 여성만해도 무려 2만명. 이들중에는 2세,3세를 본 40대,60대도 있을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우월의 「사위」들이지배하는사회에살고있는것은아닐까.
오는 5월31일 이화개교기념일은 김활란여사의 이화50년 봉직을 축하하는 행사도 겸한다. 우월은 어쩌면 최후의 「개화여성」으로 이제 만년을 보내고 있다. 그의 머리는 아직도 젊은 여성의 그것처럼 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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