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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양자역학·상대성이론, 그 탐구의 끝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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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론물리학자 닐 투록은 교육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교육이야말로 아프리카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라며 2003년 아프리카 수리과학연구소(AIMS)를 건립했다. 2008년 AIMS 학생들과 함께한 닐 투록(가운데 백인). [사진 시공사]

우리 안의 우주
닐 투록 지음
이강환 옮김, 시공사
340쪽, 1만8000원

단박에 끝까지 읽어야 속이 시원한 책이 있다. 그래야만 그 책의 진면목을 알아볼 수 있다. 책 내용이 지은이의 삶과 온전히 얽혀서 진행되는 경우다. 지은이가 자신의 글에서 물러나있지 못하고 매 순간 글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그런 책은 도저히 한 부분을 따로 떼내 읽을 수가 없다.

 이런 책을 만났을 때 독자로서의 선택은 간단하다. 단박에 끝까지 읽든지 다음을 기약하면서 멀리 던져버리든지. 이론물리학자 닐 투록이 쓴 『우리 안의 우주』도 그런 책 중 하나다.

 투록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차별) 정권이 날뛰던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정치적 망명의 길을 선택한 부모를 따라서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 정착한 후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는 것을 보고 꿈을 키워서 과학자가 된 전형적인 ‘아폴로 키드’였다.

 그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과학에 대한 꿈을 키워준 마거릿 선생님이 있었다. ‘공부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재미있는 방향을 알려주는’ 선생님이었다. 투록이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일하던 중 그를 다시 만났을 때, 선생님은 70대 후반에도 여전히 대중을 위한 교육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선생님은 투록이 아프리카 교육에 전념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우리 안의 우주』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교양 물리학 책처럼 보인다. 여느 책들처럼 서양과학사에 대한 다소 긴 서론으로 시작한다. 20세기 물리학의 발견의 시대로 넘어가면 양자역학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런 다음 현대 우주론 이야기가 나오면서 현대 물리학의 또 다른 산맥인 상대성이론 이야기가 이어진다. 브레인끼리 부딪히면서 우주가 탄생한다는 자신의 우주 기원론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들려주고 있다. 과학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진단을 한 후 미래에 대한 전망과 바람을 이야기 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교양 물리학의 전형적 서술 방식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투록은 ‘현대사회는 과학과 과학적인 사고방식에 근거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과학과 사회의 분리는 해로운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과학은 순전히 사람에 대한 것이다’라는 점도 잊지 않고 있다. 과학의 경이로움을 말하고 있는 부분을 읽다 보면 어느새 이야기가 과학자의 삶으로 환원돼 있다. 그런가 보다 하는 사이에 우리는 아프리카와 과학과 교육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의 삶의 화두인 아프리카와 과학과 교육이 온통 뒤얽혀서 책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이다.

 『우리 안의 우주』는 그런 특별함을 지닌 책이다. 그래서 그 얽힘을 풀려고 하지 말고 그냥 단박에 읽어야 한다. 자연을 생각하고 만나면서 그 거대한 벽 앞에서 우주적 허무함을 느낄 때가 있다. 그 순간에 그 허무함에 대한 탐구심이 불타오르면 보통 과학자가 된다. 우주에 대한 탐구는 자연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고 그 성찰의 끝자락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삶에 대한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사회 속에서 실천이 이어진다. 과학자가 걸어가야 할 모범적인 삶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 것이 있다. 투록은 과학자가 됐고 옛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서 일반인과 과학의 경이로움을 공유하려고 했다. 아프리카를 잊지 않고 ‘아프리카 수리과학연구소’를 세워서 과학을 통해서 올바른 세상을 실현하려는 실천의 길에 기꺼이 나섰다.

 그 실천의 증언이 이 책 속에 한 덩어리로 얽혀서 생생하게 담겨있다. 탐구심이 성찰로 이어지기도 어렵지만 그것이 실천의 경지로까지 나아가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우리 안의 우주』는 그 모든 여정을 순례하고 있는 한 과학자의 진정성 있는 고백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특별한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은 그와 함께 긴 호흡을 공조하면서 단박에 읽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투록은 ‘들어가는 글’에 이렇게 써놓았다. “내 목표는 우리가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음을 축하하고, 그것이 우리를 함께 이끌어주는 무언가임을 깨달으며, 우리의 미래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그는 우리 안에 우주가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서 깨닫기를 바랐지만, 우리는 그보다 먼저 우주 안에 ‘멋진 그대’가 있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명현 천문학자·과학저술가

●이명현 네덜란드 흐로닝언대에서 천문학을 공부했다. 역서 『우주 생명 이야기』 『스페이스』 『문더스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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