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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기고

DMZ 60년, 이젠 내실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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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성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 “평화는 평화로 더욱 단단해진다.” 모두가 아는 경구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전쟁을 억지하고 평화의 길을 여는 것은 실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월맹은 부패한 월남을 무력으로 접수했고, 서독은 무너져 내리는 동독을 흡수, 통일했다. 우리는 지금 어디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나? 인류는 거대문명·대량생산·소비·폐기구조에서 비롯된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로 생존이냐, 파멸이냐의 임계점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우리 민족은 동북아 국제권력질서가 재편되는 시점에서 김정은 3대 세습체제의 공공연한 핵무장으로 평화냐, 대결 질서냐의 전환점에 놓여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갈림길이다. 근본을 점검하고 기본을 튼튼히 해 앞서가는 나라가 될 것인지, 허세를 부리다 퇴행할지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달렸다. 후자의 대표적 사례가 이른바 4대강 살리기다. 4대강 본류를 막아 물을 가둬 놓고 수질개선이라고 강변하고, 지천·지류·상류를 손보지 않고 본류에만 중장비를 투입해 거대 구조물을 만들어 놓고 수해방지용이라 하는 것은 기본을 경시한 처사다.

 마찬가지로 비무장지대(DMZ)를 ‘세계적인 관광명소화’ 하겠다는 말도 너무 쉽게 나오고 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모두 나름대로 심사숙고하고 정책을 발표했겠지만 선거용이나 치적용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사업 구상과 계획도 ‘피스 빌리지’ ‘피엘존(PLZone)’ ‘그린 공동체’ ‘에코피스지대’ 등등 대부분 영어로 제시한다. 그 말을 알아들을 현장 주민은 몇 안 된다.

 DMZ 일원의 생태계나 토지이용 실태나 접경지역 주민의 사회·경제 상황에 대한 조사도 종합적·정기적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더구나 주민 교육이나 의견 수렴도 없다. 있다 해도 시·군 공무원을 대동하고 이장·자치위원장급 정도 몇 명 만나곤 이른바 전문가·교수들이 만든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DMZ 관련 행사나 용역사업에 몇 억원씩 쓰기 일쑤다. 예로 몇 시간 행사에 1000여 명이 참여하는 평화콘서트는 예산이 4억5000만원이다. 이 돈으로 2박3일 교육을 하면 40명씩 90회가 가능하다. 중국·일본·미국·러시아 등 한반도 분단과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국내 유학생 3500명을 교육할 수 있다. 그들이 DMZ 현장에서 생생한 교육을 받으면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보이지 않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이 내실이다.

 많은 국제행사·학술세미나·공연 등은 대부분 허세로 보인다. 내실을 따져 땀 흘린 만큼의 열매를 맺게 해야 한다. DMZ 일원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들과 군인들의 실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들이 DMZ의 가치를 보전하고 향상시켜 세계화하도록 정책을 바꾸자.

 중앙정부와 소위 전문가들이 만든 책상머리 계획은 참고 정도로 하고 지방정부·기초지자체, 그리고 주민들이 함께 만든 내실 있는 현장 계획을 중앙정부가 밀어주도록 해보자. 주민교육을 체계적으로 해서 그들이 진정 평화·생태·세계시민이란 뜻을 알고 표현하게 하자. 이렇게 하면 아마도 같은 예산의 반만 써도 성과는 두 배 이상 나타날 것이다.

 현장 주민과 군인들을 똑똑하고 훌륭하게 변화시키는 것이 DMZ 정책의 기본이 돼야 한다. 중앙정부와 전문가는 촉진자·후원자가 되고 DMZ 현장 사람들이 주체가 되게 하자. DMZ 60년, 허세를 버리고 내실을 쫓아야만 DMZ를 넘어설 수 있다. 10년을 작정하고 현장주체·실사구시의 길을 가보자. 그러면 정말 DMZ를 평화와 생명의 지역으로 바꿀 수 있는 밑바탕 힘이 생길 것이다.

정 성 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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