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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내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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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

“창조경제는 지우개다.”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 얘기다. 지우개만 있으면 창조경제는 성공할 수 있단다. 무슨 얘기일까. 자동차 개조업을 예로 든다. 우리는 차를 개조하는 게 사실상 금지돼 있다. 차대를 바꾸고 헤드램프를 교체하려면 사후 인증을 받아야 하는 데다 절차도 복잡하다. 개조 가능한 분야도 제한돼 있다. 하지만 외국에선 자동차를 맘대로 개조할 수 있다. 개조 시장 규모가 세계적으로 100조원이나 될 정도다. “개조를 못하게 막는 규정을 지우개로 지우자”는 게 이 부회장의 주장이다. 1%만 가져와도 1조원 시장이 새로 생긴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이게 창조경제가 아니고 뭔가”라고 설명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규제완화다. 정부 규제가 창조경제를 막는다는 의미다. 하긴 그동안 수없이 많이 나왔던 얘기다. 역대 정부 가운데 규제완화를 강조하지 않았던 정부가 있었던가.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 규제가 이슈일 정도로 규제완화는 지지부진하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를 주창하고 나선 이 정부에선 가능할까. 솔직히 나는 비관적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지우개’를 다른 말로 풀면 자율성이다. 그렇다면 “창조경제는 자율성이다”라는 등식이 가능하다. 창조경제의 본질은 창조적 아이디어다. 이게 활발해야 창조경제가 가능하다. 하지만 창조적 아이디어는 자율성이 생명이다.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문화와 풍토는 창조적 아이디어의 무덤이다. 창조경제의 설계자로 알려진 윤종록 미래부 차관이 강조하는 ‘후츠파(chutzpah)’도 따지고 보면 자율성이다. 후츠파는 ‘주제넘은, 뻔뻔스러운, 철면피, 오만’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 말이다. 지위 고하나 나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주장을 과감하게 내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튀면 죽는다’고들 한다. 대통령 주재 회의가 그렇지 않은가. 일국의 장관들조차 모두 고개를 숙인 채 대통령 말을 열심히 받아 적을 뿐이다. 국민들에겐 후츠파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신은 ‘받아쓰기’만 하는 풍토, 이런 곳에서 창조경제가 가능할까.

 3년 전 정부가 큰돈 들여 외국계 컨설팅 기관에 과학기술 관련 연구소들의 문제점을 조사하고 개선 방안을 내놓게 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산업기술연구회 및 소관 연구기관 조직개선 방안 연구’였다. 이 보고서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을 들었다. “연구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외국 연구소들은 “정부로부터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확보한 기관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 일껏 큰돈 들여 용역을 준 정부로선 대단히 난처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이 보고서는 외부에 공표되지 못한 채 그냥 사장됐다.

 이런 풍토가 이 정부에선 대체 얼마나 달라졌을까. 대답은 부정적이다. 얼마 전 과학기술 관련 정부 출연 연구소들이 ‘출연 연구소 운영의 자율성 확보’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가 획일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에 우수한 과학자를 유치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소를 공기업과 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시스템도 지적했다. 수익과 비용의 잣대로 따지면 중장기 연구를 전문으로 하는 연구소가 평가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소도 물리, 천문, 우주항공, 화학, 지질 등 다 다른데 이를 일렬로 세워 동일 잣대로 평가하는 ‘줄 세우기식 평가’도 문제라고 했다. 하나같이 다 옳은 지적이다. 그런데 예산을 지급하는 기획재정부는 여전히 반대다.

 창조경제는 목청 높여 외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관치(官治)로부터의 탈피, 이를 통한 자율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래야 규제가 사라진다. 그러려면 높은 사람의 의식과 일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어떤가. 이 정부의 높은 사람들은 과연 달라지고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정부 스스로 내놓지 못하는 한 창조경제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을 거다.

 시인 박노해의 시 중에 ‘제발 내비도’가 있다. “도(道) 중의 최고 도는 기독교도 아니고 유불선도 아니고 (…)내비도다! 그냥 냅둬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내게 제발 내비도!” 이 정부가 이 시만큼만 해줬으면.

김영욱 논설위원·경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