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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지원펀드, 또 눈먼 돈 될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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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

“한국에 눈먼 돈이 넘친다면서요.”

 지난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국인 벤처업계 종사자들은 한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창업지원 펀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한국 경제가 추격형에서 창조경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튼튼한 벤처생태계와 같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과거에는 이 같은 시스템 정착보다 돈만 뿌려대는 인상이 역력했던 것도 사실이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눈먼 돈’을 노리는 세력에 악용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정부가 15일 발표한 벤처·창업 자금 선순환대책은 이 같은 우려를 불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럼에도 현장에서는 정부가 벌이는 일이 여전히 겉치레에 치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최근 실리콘밸리에 세운 창업지원센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출발부터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는 벤처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었다는 창업지원센터는 실제로는 KOTRA가 운영해온 실리콘밸리 IT센터에서 간판만 바꿔 단 것이다. 마치 새로운 센터가 ‘창조’된 것처럼 포장만 한 셈이다.

 지적재산의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 풍토 또한 아쉬움의 대상이었다. 구글 본사에서 일하는 백창현씨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열심히 일하는 이유는 어렵게 만들어낸 소프트웨어에 대한 가치를 충분히 쳐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식산업의 결정체인 신약도 마찬가지다. 10년에 가까운 임상시험 기간 등을 거치며 1조원이 넘는 연구개발비가 투입된 신약 한 알당 2만∼3만원의 가격이 매겨질 경우 “원가가 얼마나 한다고 이렇게 많이 받느냐”는 질타를 받기 일쑤다. 만연해 있는 제조업 마인드로는 연구개발을 통해 집적된 지식은 무시되고 작은 알약에 들어간 원료비만 따지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생태계와 구성원의 마인드 등 기초부터 탄탄히 쌓아올려야 한다. 급한 마음에 초고속으로 도달할 과제가 절대 아니다.

심재우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