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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엊그제 어떤 학생단체의 지도 교수 협의회라는 것이 있어서 오래간만에 야영장 생활을 이틀 동안 하고 왔다. 전국 각 대학에서 한 사람쯤은 왔으니까 그 수도 꽤 적지는 않았다. 거기에 학생들도 끼이고 하니까 한 50명은 되었을 것이다.
회의도 회의지마는, 이번 모임의 성과는 항상 교단에서 배워주기만 하는 사람들이 전문지식을 제쳐놓고 우선 인간적으로 마음의 벽을 헐어 놓았다는데 있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젊은 기분으로 가위바위보도 해 보았고, 합창도 해보았다.
「캠프·파이어」를 둘러 앉아 싸고, 맥주통을 기울이며 기타에 맞춰 옛 노래도 불렀고, 인생을 논하기도 했다. 모든 겉치레를 다 없애고 발가숭이가 되어 본 것이다.
그러나 학생들의 구김새 없는 성장에 비하면 교수들의 처지가 오히려 부끄러울 지경인 것이다. 자연과 인생을 혼자서가 아니라 뜻 맞는 친구들과 함께 마음껏 구가하며, 잡음 없이 미소지으며 봉사하는 그들의 순수한 얼굴이 잊혀지지를 않는다.
그들은 교수의 이해를 필요로 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수를 이해해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오히려 지도를 받아야 마땅하지 지도를 할게 아니라는 느낌마저 가졌던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마음의 울타리를 헐어버리지 못하고 너무나 각자가 어른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회가 다 그런게 아닌지 모르겠다.
학생들은 적어도 그 단체에서는 그들의 참다운 지도자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마음의 벽이 헐린, 툭트인 스승말이다. 아마 우리 교수들에게도 그러한 인정이 아쉬웠던 것이 아닌가 싶다. 먼지만 이는 이 마른땅을 적셔줄 단비가 기다려지듯이 사람은 모두 따스한 인정에 젖기를 바라는 것이다. 지도자란 따스한 인정의 비를 뿌려줄 줄 아는 사람이라야 한다.
우리가 지도자 구실을 못하고 있는 중대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교수들 자신이 우선 순조로운 발전을 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하에서 성장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불신과 모멸의 황무지가 아니라 존경과 우정의 풍토가 아쉽다는 말이다.
그러한 풍토는 지도자의 넓고 아량 있는 마음가짐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거리를 거닐면서 더 좀 시원하게 쏟아졌으면 싶은 생각이 아마 그래서 났던 모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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