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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심판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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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흔히 역사처럼 절대적인 것은 없고, 역사처럼 거짓이 없는 것은 없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역사의 심판을 받는다』는 말을 잘 쓴다. 그러나 역사처럼 거짓이 많고, 역사처럼 변하기 쉬운 것도 없다. 사람이 역사를 심판하는 것인지, 역사가 사람을 심판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을 때도 많다.
역사학에서는 사료에 입각한 과학적인 검토의 결과 거의 진실에 가깝다고 확인된 것만을 두고 역사적 사실 또는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른바「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 도「트로이」전쟁처럼 때를 따라 뒤집히는 수 가 많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4·19가 그렇다. 그것을 정확히 언제부터로 잡아야할 것인지는 사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이「혁명」인지,「의거」로 봐야할 것인지도 견해에 따라 다르다. 4·19행사가 해마다 소규모화해 가는 것도 뭣인가 그런「보는 눈」이 달라진 때문인 것 같다.
올해엔 서울시주최로 시민회관에서 소리 없이 행사가 있었다. 4·19를 전국적인 것이 아니라 서울의 일부 학생들의 의거로만 보고싶은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것을 아득히 먼 옛날의「역사적 사실」로만 여기게 될 만큼 세월이 흐른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보았다. 민주주의의 새 역사가 피와 눈물로 엮어지는 것을! 한줄기 우리의 희망이, 우리의 꿈이, 우리의 내일이 암운에 뒤덮인 하늘 한복판에서 비쳐 내리는 것을 우리는 보았다…· 태양은 이날부터 찬연히 우리의 머리 위에 비치기 시작하였다.』 여덟해 전의 이 무렵에 이렇게 어디선가 외쳐본 기억이 난다. 이날의 감격과 영광이 어디 갔는지, 누구에게 그 책임이 있는지 따져보고 싶기만 하다고 외어본 것도 몇 해전의 일이었다.
지금은 아무 감회도 우러나오지 않는다. 그저 덤덤히 하늘을 쳐다보는 것이다. 오늘도 태양은 우리 머리 위에 있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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