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KT 민영화 재계 지각변동 예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KT(옛 한국통신·사장 이상철)는 수십년 간 정부의 통신정책을 집행해 온 공기업이다. 현재와 같은 수준의 전화 보급률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은 KT를 빼놓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가 발표한 KT 민영화 계획은 기타 공기업의 민영화와는 크게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철강 등 중간자본재를 생산하는 포항제철(POSCO)은 소비자가 기업에 국한되고 한국 담배인삼공사는 기호품을 생산하는 만큼 고객이 흡연자로 좁혀진다.

그러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KT는 전화와 인터넷을 사용하는 전국민이 고객이다. 그만큼 국민생활 전반에 크나큰 파급효과를 미친다는 얘기다.

KT로 상호를 바꾼 한국통신은 1997년 정부출자기관으로 전환됐다. 그후 KT는 외국인 소유한도 확대와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 성공에 힘입어 현재 28.36%의 정부 지분만을 남겨두고 있다. 이 지분을 이달 중 매각해 KT를 완전 민간기업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방침이다.

사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개혁의 성패는 KT의 정부지분 매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KT는 자산기준으로 재계 6위인 통신업계의 거대 ‘공룡’이다. 지난해 당기 순이익은 1조5천억원으로 삼성그룹·한전·현대자동차그룹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그런 점에서 KT의 민영화는 재계뿐 아니라 한국경제 전반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사실 KT의 민영화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이미 1987년 ‘공기업 민영화추진위원회’(이하 민추위)가 발족돼 KT 민영화 추진계획을 확정했다. 당시 민추위는 경영권 확보에 필요한 정부지분 51%를 제외한 49%의 지분을 국민주 방식을 통해 연차적으로(1990년 25%, 1991년 24%) 매각키로 결정했다.

그러나 국민주 방식의 매각은 당초 기대했던 저소득층 재산형성 효과가 미흡했다는 평가와 함께 증시안정 저해 등을 이유로 한전이나 포항제철(POSCO) 등의 일부 지분 매각 이외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1994년 폐지됐다.

현정부 출범 이후 공공부문 개혁의 일환으로 다시 추진돼 온 KT 민영화는 동일인 지분한도 및 외국인 소유한도 확대 등 실질적인 조치들로 인해 현재 외국인 소유 지분이 49%에 육박하고 있다.

KT는 이번에 처분키로 한 정부 지분 28.36%(8천8백57만주) 중 5%를 대기업(전략적 투자자), 2%를 기관투자가, 1.83%를 일반투자자에게 매각하고 이들에게 13.83%까지 교환사채(EB·기업이 자사주는 물론 자사가 보유한 타사 주식을 담보로 발행하는 회사채)를 취득할 권한을 주는 매각 방식을 확정했다.

특히 전략적 투자자가 KT 지분을 한도 5%까지 매입할 경우 그 배(10%)까지 EB 우선매입권을 취득할 수 있게 돼 최대 15%까지 KT지분 보유가 가능하다. 현재 확인된 KT의 공식 매각 일정은 15일까지 ‘유가증권 수요예측’(Bookbuilding)을 마치고, 16일 가격산정위원회가 북빌딩 결과와 매각 예정가를 토대로 최종 가격을 결정한 뒤 17일 오전에 가격 공고와 함께 청약 접수에 들어간다.

KT 매각은 대기업(전략적 투자자) 간에 KT 지분 인수戰을 촉발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SK·LG 등 KT 인수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은 아직 인수 의사를 노골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주가 급등을 막기 위한 일종의 ‘눈치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연간 약 1조원의 통신장비를 KT에 납품하는 삼성으로선 굳이 지배주주로의 부상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경쟁업체인 LG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KT지분 인수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고, 통신업계의 또다른 강자 SK로서도 ‘족쇄 풀린’ 공룡 KT를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지분인수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KT는 현재 SK텔레콤 주식의 9.27%를 보유하고 있어 이래 저래 발을 빼기 힘든 입장이다(KT는 SK그룹에 이어 SK텔레콤의 2대 주주다).

한편 LG로서도 삼성과 SK가 지분 인수를 선언할 경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할 수 없는 입장이다. LG 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삼성이 KT 지분 입찰에서 완전히 손을 뗄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우리도 일정 지분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의 관심은 민영화 이후 KT의 기업지배구조 설계에 상당 부분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요 골자는 전문경영인 체제의 공고화와 CEO에 대한 견제장치 구축이다. 구체적으론 현재 6명의 사내이사와 7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된 이사회에 사외이사를 추가로 선임해 전문경영인의 독선을 막고 감사위원도 모두 사외이사로 선임하겠다는 것.

그러나 이에 대해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의 김상조 소장(한성대 교수)은 “EB를 포함해 3% 이상의 지분을 갖는 전략적 투자자가 사외이사를 초청할 경우 정부가 이를 호의적으로 고려한다는 부분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전략적 투자자가 KT와 경쟁 관계에 있을 경우엔 사외 이사를 초청하더라도 호의적 고려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대목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그는 말한다.

KT 민영화 방식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정부가 특정 재벌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서 나온다. 국민 모두의 통신생활 편익을 위해 설립된 KT가 자칫 재벌의 손에 넘어가 특정 가문을 살찌우는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경실련 정책실의 박정식 부장은 이와 관련해 “우리는 민영화라는 대전제에는 찬성하지만 특정 재벌의 산업 독점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한편 KT 주변에서는 정부가 매각 일정에 지나치게 집착해 매각 주도권을 지분인수에 참여한 대기업에 빼앗김으로써 우량 기업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의 민영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이제 민영화 이후 KT의 역할과 방향에 초심이 맞춰져야 할지 모른다.

이를 위해 KT는 기존의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모습에서 통신시장에서의 주도적 사업자로 변신해야 하고, 민영화가 단순한 지분매각에 그치지 않고 민간기업의 효율적 경영을 달성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공기업적 사고방식을 임직원이 떨쳐버리지 않을 경우 민영화라는 거창한 구호는 속 빈 강정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KT의 공익적 역할을 감안해 민영화 이후에도 이를 지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국민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는 KT가 수익성에 관계 없이 산골과 도서 지역에도 통신서비스를 공급해 왔지만 일단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이 되면 굳이 적자 부문을 유지할 필요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KT처럼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공룡 기업의 민영화에 따르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한 이유다.

출처:강 태 욱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