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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콩 쟁탈전… 중국, 송유관 만리장성 쌓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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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얀마 중부 만달레이를 통과하는 ‘송유관 만리장성’. 이 송유관은 미얀마의 서부 항구도시인 차욱퓨에서 시작해 중국 윈난성 쿤밍까지 800㎞를 내달린다. 중국은 이 송유관 건설로 미국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믈라카 해협을 거치지 않고도 원유를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은 지난해 말 공사 당시 모습으로 지금은 완공돼 덮여 있다. [사진 대우인터내셔널]

이달 초 방문한 미얀마의 중부 도시 만달레이. 그곳에서는 중국·일본·미국, 여기에 인도·태국 등이 가세한 시장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메콩(Mekong) 지역을 선점하려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만달레이-중국 쿤밍(昆明)을 연결하는 3번 국도는 바로 그 현장이다.

 70여 년 전. 장제스(蔣介石·장개석)가 이끌던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일본과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동부 주요 도시는 이미 일본에 점령당했고, 국민당은 충칭(重慶)으로 쫓겨 도망갔다. 미국·영국 등 연합군은 육상을 통해 물자를 공급해야 했다. 그래서 뚫은 게 바로 미얀마의 옛 국명을 딴 ‘버마로드(Burma Road)’였다. 미얀마 서부 인도 국경에서 시작해 만달레이를 거쳐 쿤밍으로 연결되는 험난한 길. 300여 명이 목숨을 잃는 난공사 끝에 1945년 1월 완공된 버마로드는 중국의 대일 항쟁을 가능케 한 생명선이었다. 그 도로가 바로 지금의 만달레이 3번 국도다.

 도로 곁 산 중턱에 황토가 드러난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현지인 난조캉잉에게 물으니 ‘송유관 만리장성’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미얀마 서부 차욱퓨 항구에서 쿤밍으로 이어지는 가스·송유관이란다. 이를 ‘만리장성’에 빗댄 것이다. 총 길이 800㎞, 이달 초 완공됐다. 이르면 다음 달부터 대우인터내셔널이 미얀마 서부 해양에서 채굴한 가스가 이 송유관을 타고 쿤밍으로 보내진다. 내년부터는 원유 수송도 이뤄진다. 70년 전엔 항일전쟁 물자를 공급했던 ‘버마로드’가 이젠 중국 서부 지역의 에너지 보급로로 거듭난 것이다.

 ‘현대판 버마로드’의 건설로 중국은 인도양으로 직접 나가는 출구를 확보했다. 미국이 실질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믈라카 해협을 통하지 않고도 중동·아프리카의 원유를 들여올 수 있게 됐다. 산드라 오 양곤경제연구소 박사는 “파이프라인의 미얀마 기착지인 차욱퓨 지역에는 중국이 20년간 사용권을 가진 항구가 건설 중”이라며 “이 항구로 중국은 원유 수송로를 1200㎞ 줄일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전체 원유 수입의 약 80%를 믈라카 해협을 통해 들여오고 있는 중국은 항구가 완공되면 믈라카 해협 의존도를 3분의 1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에너지 패권에서 벗어나려는 중국으로서는 또 다른 쾌거다.

 이 밖에도 메콩지역 곳곳에는 일본·미국·태국 등이 주관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선진 서강대 교수는 “ 개발 열기는 태국·베트남을 넘어 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메콩 지역에 대한 협력, 진출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 이정재(베트남, 캄보디아)·한우덕(미얀마, 중국 윈난성)·채승기(라오스, 태국)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심상형·박경덕·사동철 포스코경영연구소(POSR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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