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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대가' 가능성 커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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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북한에 보낸 2천2백35억원(약 2억달러)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였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현대와 북한 간 계약 체결"=현대상선은 지난달 28일 감사원에 2천2백35억원의 사용처를 설명하는 자료를 내면서 "대북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 쓰였다"고 했다.

그리고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장과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 사이에 체결된 기본협약서 1부와 세부협약서 7부를 첨부했다.

하지만 이 중 가장 빨리 체결된 게 6.15정상회담 이후인 8월 것이었다. 2억달러를 북한에 송금한 뒤 2개월이 지나서야 최초협약서가 체결됐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현대 측은 "1998년부터 논의가 이뤄져 왔다. 계약 체결과 자금 지급의 시차만 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계약을 체결하기도 전에 현대가 2억달러란 거금을 송금했다는 것은 기업관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경제협력 사업"이란 주장이나 박지원(朴智元) 청와대 비서실장의 "현대의 사업독점 계약권료였다"는 발언은 신뢰도가 많이 떨어진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2000년 8월 남측 언론사 사장단을 만나 "현대 측에 관광단지와 공업단지를 꾸밀 수 있도록 개성을 줬는데 이건 6.15 남북정상선언의 선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2천2백35억원만 신원 미상 개인이 인출"=현대상선이 2000년 5월부터 6월 사이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돈은 문제가 된 4천억원을 포함, 모두 5천억원이다.

현대상선은 그 중 2천2백35억원을 수표 26장으로 신원 미상의 개인 명의(6명)로 인출했다. 이들은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공무원연금공단의 관리대상에 들어있지 않다.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인물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머지 돈은 모두 현대상선의 당좌예금 계좌로 입금됐거나 현대건설 기업어음(CP)을 매입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감사원이 한나라당 엄호성(嚴虎聲)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서 확인됐다.

현대상선은 또 4천억원 중 2천3백억원을 파문이 확산된 지난해 10월까지 갚지 않았다. 2000년 9월과 10월에 각각 4백억원, 1천3백억원을 갚았으나 나머지는 상환하지 않고 버틴것이다.

이와 관련,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전 사장이 "우리는 손도 대지 않았다"고 말한 바 있다. 현대가 갚을 돈이 아니라 정부가 책임질 돈이란 얘기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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