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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뒤에 도사린 "사각"들|부산전화국 화재 「결과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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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3면

52명의 사상자를 낸 부산전신전화국 대화는 요즘 한창인 고층건물 건축「붐」에 따르지 못하는 소방 시설과 장비등의 빈곤을 크게 드러냈다.
부산시외전신전화국 청사에 대한 방화진단은 이 건물이 준공하기 직전인 67년11월10일이었다.
방화진단을 한 부산중부소방서는 공문통첩으로서 건축법시행령 107조 동11조, 그리고 소방법 10조 및 동법시행령 10조를 적용, 다음 10개 사항을 갖추도록 촉구했다.

<예산부족이 구실>
①방화수12개 ②방화사12개 ③「바께쓰」24개 ④삽24개 ⑤소화기 25개 ⑥2층에 피난 줄사다리1개 ⑦3~4층에는 구조대 및 피난사다리1개씩 ⑧5,6,7층에는 구조대와 피난사다리 각1개씩 ⑨옥내 소화전 각 층마다 1개씩 ⑩옥상물 「탱크」1백26개 톤들이 설치등.
부산중부소방서는 그 후 5~6차나 계속 독촉했으나 부산전화국 측은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소방서가 통첩한 10개 사항에 대해서 완전 묵살해버렸다.
전신전화국이 갖춘 소방시설이라곤 모래12부대 가운데 2부대, 물24통 가운데 5~6통, 삽 6개,「바께쓰」 6개 뿐이었다. 이 장비는 겨우 단층건물의 소화장비 밖에 안되는 것. 그러나 특히 관공서등 공공단체의 고층건물은 소방시설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도 시설개선 명령이나 사직당국에의 고발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종용이나 권고로 그치는 형편이다.
연 건평 3천3백70여평에 약1천여명이 근무하는 이 8층 건물에 각 층마다 비상구는 하나밖에 없는데다가 밖으로「베니어」판을 대고 못질을 해서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출입구는 단하나>
특히 이번 불로 42명의 사상자를 낸 5층의 교환실은 총면적 2백평에 2백여명이 일하는 곳인데도 너비1.3미터 가량의 출입문이 하나밖에 없었고 비상구도 없었다.
거센 불길에 갇힌 2백여명의 교환양들은 발만 동동구르다 질식에서 벗어나려고 신문지 한장 넓이 만하게 트인 유리창문을 깨고 다투어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을 정도.

<소방전도 없었다>
게다가 고층건물 화재에 없어서는 안될「네느」와 「로프」가 비치되어 있지 않았고 부두지구 구획정리 지역인 탓으로 지상에는 소방전 마저 없었다.
그리고 부산소방서가 갖추고 있는 사다리차는 4층까지밖에 올라갈 수 없는 길이(65피트)의 것이 단2대뿐, 직경3미터의 구조막이 있긴하나 낡을대로 낡아 5층에서 뛰어내린 박외출양(22)은 구조막의 한복판이 뚫어지는 바람에 중상을 입기까지 했다.

<펌프수압 5층만>
소방 「펌프」차 역시 수압이 겨우 5층정도 밖에 올라갈 수 없는 것이어서 이모 불의 경우 소방대의 기능은 마비 상태였다.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다못해 교환양들은 20미터나 되는 지상으로 뛰어내리는 길밖에 없었다. 땅에서는 이들을 받기 위해 천막이나 이불등을 깔고 원시적인 구조작업을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화상자보다 추락사상자를 더 많이내는 원인이되었다.
서울건축연구소장 나상진씨에 의해 설계된 이 건물은 66년5월16일 체신부가 총공사비 2억3천6백50만원을 들여 아주토건(대표 김재억)에 하청, 67년12월20일 완공? 것.
8층의 이 고층건물은 체신부가 건설부에서 직접허가를 받아 시공, 소방당국의 안전검사등도 거칠 겨를 없이 지난1윌21일 개청식과 함께 입주했었다.

<설계상의 모순도>
건축전문가들은 설계 때부터 계단식 비상구를 남북양쪽에 내야할 것을 북쪽편에만 낸 설계상 모순이 보였다고 입을 모았다.
비상구의 위치는 정문(서쪽)의 반대방향에 있어야 불이 났을 때 대피가 가능한데 북쪽에 바로 이웃하여 다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엘리베이터」를 가설하려고 통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불길과 연기가 한꺼번에 이 통로로 쏟아져 나와 안에 갇힌 직원들은 불길 속에서 발길이 끊기고 만 것이다.<부산=나오진·곽기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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